6. 신의와 통교의 원칙
오늘날 같은 복합적인 사회에서는 모든 진실이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써는 얻어지지 않는다. 상호 긴밀한 사회적 협조로써 생명수호의 정보가 교환되는 것이다. 특히 환자에 관한 모든 정보의 교환,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통교와 신의, 의료진 사이의 통교는 필수 불가결하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 정보를 가진 이들끼리의 성실한 접촉, 정보의 분석, 통교의 실패를 회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반성 등이 요구된다. 이모든 것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관계자들끼리 감정적 관계가 좋아야 한다. 감정적 상호 개방은 매우 중요하다.
신의와 통교의 원칙에서 보면 의료진은 환자에 대한 봉사직 수행에 있어 다음과 같은 책임이 있다. 환자와 감정적, 이성적 차원에서의 신뢰를 구축하고 보존할 책임은 우선적으로 의료진에게 있다. 또한 관계 의료진에게 정당하고 확실한 양심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올바른 정보를 성실하게 제공할 책임이 있으며, 나아가서 거짓과 잘못된 정보를 막을 책임도 있다. 또한 의료진은 합법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환자에 관한 비밀을 지켜 주지 못할 경우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신뢰는 파괴되고 치유는 이루러 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인 의료진이 직업자에 대한 사랑과 그의 인간적 존엄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7. 인간 존엄성 보장의 원칙
보건, 의료를 비롯한 모든 영역의 윤리적 결정은 무엇보다 먼저 인간 존엄성의 보장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 보장은 막연한 이론적 보장이 아니라 각 개별 인격의 타고난 필요성, 문화적 요청까지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세계 공동체, 국가 공동체 및 각 소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 필요성과 요청을 충족시키는 보장이어야 한다.
특히 이 원칙은 노인, 가난한 이, 중환자, 버림받은 이들, 여성, 어린이 등에 더욱 철저히 적용되어야 한다.
8. 공동선과 보조성의 원칙
공동선은 각 공동체 구성원들의 총체적 발전과 인격 완성을 위해 추구 되어야 할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정당한 법, 경제, 문화, 도덕, 종교 등은 모두 공동선의 구성 요소이다. 생명 및 의료 윤리 상의 모든 결정, 그중에서도 공공의 결정은 특히 한 공동체 그 전체와 사회의 참된 공동선을 염두에 둔 결정들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국가의 낙태 관련 입법은 개인과 가정의 표면적 유익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 인간성 전체의 참된 공동선을 지향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 가정의 유익을 전혀 도외시하는 전체주의적, 국가주의적 결정들을 피해야 한다.
따라서 공동선의 원칙이 중시됨과 동시에 보조성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보조성의 원칙이란 모든 고차원의 사회 단위는 그 보다 하위의 단위들이 스스로는 성취할 수 없는 일을 보조하고 그들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나 개입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따라서 하급 단체와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필요시 베푸는 보조는 생명 및 의료 윤리의 차원에서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국가의 인구정책은 가정과 개인의 자율성은 억압하는 강제적, 회유적 가족계획 정책이어서는 안 된다.
9. 전세성의 원칙
공동체내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모든 개별 인격은 자신의 본성적인 육체적, 심리적 기능을 발전시키고 보호, 보존해야 한다. 그러므로 낮은 차원의 기능들은 전체 인격의 더 나은 기능을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희생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인간의 됨됨이를 규정하는 기본적 능력들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치료의 경우가 아니라면 결코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예: 불임수술).
이는 공동선 및 보조성의 원칙과 상통하는 원칙이다. 개인과 공동체는 전체를 위한 상호 의존성을 가지고 있어서 함께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 개별 인격은 인위적이 아닌 자연적인 단위로서 전체에 의존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반면에 공동체는 개별 인격들이 인위적으로 구성한 단체로서 개인들을 위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개인이 전체를 위해서 있다고 보는 전체주의나 집단주의는 거부된다. 사회는 각 개별 인격이 자신을 발전시키고 보호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전체를 위해서 개별 인격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그러나 한 개별 인격이 지속적으로 전체 공동체에 해악을 끼칠 경우 그의 인격적 존엄성이 기본적으로 보호되면서 그를 격리시키는 경우는 위와는 다른 문제이다). 이 전체성 원칙은 한 인격 내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1) 인간의 건강은 어느 조직이나 장기만의 건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건강은 인간으로서의 전체적 능력의 문제이다.
2) 어떤 부분적 기능은 인격 전체의 선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구될 때 그 손상이 가능하다(그 결과 다른 모든 기능들이 더욱 원활히 작용할 때).
3) 부차적 기능들은 더욱 기본적인 기능들을 위하여서는 언제라도 희생될 수 있다(예 : 손가락 하나를 제거하여 전체 손이 원활한 작용을 할 때).
4) 인간적 품위(인격성 그 자체)를 중대하게 손상시키는 정신적, 심리적, 육체적 희생(예 : 생식 능력, 사고력, 감정적 능력 등)은 목숨을 구하기 위한 중대한 목적이 아니면 손상될 수 없다.
10. 고통을 통한 전체 인격 성장의 원칙
어떤 행위가 인간의 참 행복을 지향(목적)하는 행위라면 그 행위는 윤리적으로 좋은 행위인 것이다. 인간의 참 행복은 병고로 인해서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계의 의무는 고통을 경감시키고 건강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고통이 악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그 고통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인격적 성장을 기할 수도 있다. 생명윤리의 원칙 중 하나는 바로 이 전체적인 인격적 성장을 기하는데 에도 있다. 의료 시설에서 영적 지도자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11. 인격화된 성의 원칙
과거에는 흔히 성은 자제만이 요구되는 인간의 동물적 기능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의 윤리학은 인간의 성을 인격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노동하고 인간의 성을 인간 고유의 것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의 성은 자유로운 결정을 요구하는 것으로서 동물처럼 자동적으로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의 성은 그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윤리적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성은 우선적으로 각 개인의 성장의 기초로, 미래의 성숙과 자아 완성의 기초로 파악되어야 한다.
성과 관련된 윤리 문제를 판단하는 원칙은 인간이 그 고유의 성을 성의 인격적 목적에 따라 구현시키느냐 하는 데에 있다. 즉 비인격적 성관련 행위는 자아 파괴를 가져오지만 인격적인 그것은 자아실현(완성)을 가져온다.
12. 관리와 창조성의 원칙
하느님은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여러 가지 모습의 본성을 부여하셨다.
그의 영성, 이성, 사회성, 성적 질서 등 인간 고유의 본성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그 모습대로 존중되어야 한다. 또한 하느님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자연환경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인간에게 관리하도록 맡기셨다. 따라서 자연환경, 우주, 동식물의 주인은 하느님이시지 인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연의 주인인 양 그를 착취하고 소진시키고 있다. 인간의 이성적 활동, 과학 활동, 창조적 활동은 하느님이 인간과 자연에 부여하신 내적 목적과 질서를 거슬러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난 연재 9에서 부터 지금까지 생명(의료)윤리상의 의사 결정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기준 12가지를 살펴보았다.
이 기준들 중 어느 하나라도 직접적으로 거스르는 결정과 그에 따르는 행위는 비윤리적 행위에 속한다. 예를 들어 성을 인격 파괴의 장, 도구로 삼는 각종 비윤리적 성행위, 혼전 및 혼외 성행위를 통하여 부부의 영육일치를 통한 상호 성장을 거부하는 일, 남. 여성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이 인간의 성과 관련하여 베푸신 각종 영적, 육체적 자연 질서를 거부하는 일, 자녀 출산을 거부하여(불임수술, 낙태, 인공적, 사회적 성장을 거부하는 일 등은 인격화된 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고 인체에 대한 각종 비윤리적인 과학적 조작을 가하여(예: 유전자 조작, 인공수정, 체외수정...) 창조주가 자연(인체를 포함한)에 부여한 창조 질서를 거스르면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보복을 당하는 것(각종 환경오염을 통한 피해)을 볼 때 인간에게 자연 질서, 창조 질서를 거부할 권리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관리와 창조성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본성과 자연을 잘 관리하기 위하여 고학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킬 때 그 스스로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인체와 성에 대한 각종 비자연적 개입들이 부당한 것은 바로 이 원칙에 비추어 알 수 있다. 과학기술의 적용은 어디까지나 자연법과 자연 질서에 맞아야 한다. 불임수술 등 각종 인공적인 피임 방법이 금지되는 근거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윤리적 분별의 원칙을 알고 있다. 이 원칙에 의하면 어떤 인간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과 본성 그 자체에 반대 되므로 이미 내적으로 악한 행위로 규정받고 있다. 본질적으로 악한 행위는 그것이 일시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또는 개별 가정, 또는 일부 공동체에) 유익을 가져올 경우라도 금지된다.
우리의 인격 주의적 생명윤리는 이미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윤리관을 거부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또는 일부 공동체에만 일시적으로 유익한 것 같으나 인간성 자체를 거스르는 행위들은 공동선의 원칙에 의해서도 거부되는 것이다. 각 개인은 비록 자신에게 유익해 보이는 행위라도 그것이 내적으로 악한 행위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악 영향을 주는 행위라면 윤리적 분별의 원칙과 공동선의 원칙에 따라 애써 피해야 한다.
예를 들면 비 배우자간 인공수정을 통해서라도 아기를 갖기를 원하는 부부를 자기 가정에 귀여운 아기를 가지려는(개인적 이익)마음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그것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악 영향을 끼치는 행위인지 알아야 한다(졸저 삶의 윤리 p133 참고).
비 배우자 간의 인공수정 그 자체가 벌써 과학기술적 간통으로서 내적으로 악한 행위일 뿐 아니라(윤리적 분별의 원칙 위배), 부부의 정결과 혼인의 이중적 의미(부부 일치와 출산)를 거스르는 행위이다(인격화된 성의 원칙 위배).
또한 그것은 각종 사회적 폐해(한 정자 제공자 -->수많은 익명의 자녀들 --> 자신도 모르는 근친상간, 혈통 혼란 등)를 가져오는 비윤리적 행위이다(공동선의 원칙 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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