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선거 콘클라베(Conclave)
콘클라베(라틴어: Conclave)는 '열쇠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방', '걸쇠로 문을 잠근 방'을 의미하는 단어로,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가톨릭교회의 역사에서 몇 세기에 걸쳐 개최되었으며, 외부의 간섭을 미리 일체 방지하여 비밀을 보관, 유지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교황 선거의 기원 초대 교회 시절의 교황 선출은 로마에 거주한 성직자와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행해졌었다. 역대 교황들은 선거법을 변경하거나, 원한다면 추기경단의 일원을 교체하는 일이 인정되었지만, 후계자를 지명하는 것만은 용납되지 못했다.
1059년 이래, 추기경단이 교황 선출의 임무를 담당하게 되었지만, 1268년 교황 클레멘스 4세의 선종 이후의 교황 선거가 탁상공론만 계속된 채 3년 가깝게 공석이 계속 되어 조바심이 난 로마 시민들은 선거자들을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가두었고, 이 이야기가 콘클라베의 기원이라고 한다. 콘클라베라고 하는 말은 라틴어의 ‘쿰 클라비’(cum clavi)에서 유래한다.
The Sistine Chapel (Cappella Sistina)
오늘날의 콘클라베의 원형은 1274년에 열린 제2차 리옹 공의회에서 결정된 양식에 근거하고 있다. 콘클라베는 바티칸 시국 내에 있는 바티칸 궁전 내 시스티나 성당에서 행해지며, 기본적으로 투표자의 3분의 2의 득표를 얻은 자만이 새로운 교황으로 등극하는 것으로 지정되었다.
2005년의 콘클라베도 시스티나 성당에서 투표했지만, 선거자들이 시스티나 성당 안에 갇혀 지내는 관례는 폐지되었다. 이것은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변경한 규정에 근거하는 것으로, 추기경들은 바티칸에 있는 숙소(성 마르타 숙소)에 머물게 되었으며, 원한다면 뜰을 산책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매스컴 등 외부와의 연락을 취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된 상태이다.
교황 선거의 역사 교황 선출 방법은 기독교 역사 2000년 내내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됐지만, 오늘날의 콘클라베(교황 선거)의 원형은 1274년의 제2차 리옹 공의회의 의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초대 교회의 주교들은 각자의 공동체의 창시자에 의해 지명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윽고 로마나 다른 지역에서 사제와 평신도, 이웃 교구의 주교들이 모이고 주교를 결정하는 방법이 취해지게 되었다. 교황으로 선택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은 성직자뿐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들에게는 교황을 결정하여 승인할 권리를 주었다. 주교는 보좌 및 감시 임무를 맡고 있었다. 교황 후보자가 결정되면 평신도의 동의가 요구되고 동의를 받으면 교황이 되었다. 민중이 큰 소리로 동의(또는 거부)의사를 표하는 것은 고대 이래의 로마의 관습이었다. 선출 과정에서 불투명한 부분이 있으면, 후보자들끼리 분란이 일어나 대립 교황이 생기는 일도 자주 있었다.
769년에 행해진 시노드에서 정식으로 로마인 평신도에 의한 승인이 폐지되었지만, 862년의 로마 시노드에서는 귀족에 한해서만 그 권리를 부활시켰다.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는 교령을 발표하여 추기경으로 승격되려면 로마의 성직자와 평신도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교황은 추기경단으로부터 선택되는 것으로 결정했다. 당시에는 주교급 추기경들이 최초로 모여 누가 다음 교황 자리에 어울릴까 하는 문제를 토의하여 결정되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제급 추기경과 부제급 추기경도 동참하여 투표하는 형태로 변모했다. 1139년, 제2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교황이나 추기경의 선출에서의 평신도와 하급 성직자의 동의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추기경단만이 교황 선출권을 갖는다는 규정은 1378년 이후에 활발한 논의를 거쳐 제정되었다. 프랑스 출신의 교황 그레고리오 11세의 사후, 로마 시민들은 이탈리아 출신의 교황을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켰으며, 추기경단은 압박을 참기 어려워 이탈리아 출신의 교황 우르바노 6세를 선출했다. 나중에 선거에 부당한 압력이 가해졌다고 생각한 추기경단은 같은 해, 로마에서 다소 떨어진 폰디로 이동하여 다시 선거를 개최하여 대립 교황을 선출했다.
이 혼란을 수습하고자 1409년에 피사 공의회가 열렸지만, 결국 교황이 세 명으로 늘어나는 등 사태만 더욱 악화하였다. 결국, 1411년부터 1418년에 걸쳐 열린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두 명을 폐위시키고 남은 한 명이 자진 퇴위하는 것으로 혼란을 수습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후, 추기경단만이 교황 선거권을 가지는 것이 재차 확인되어 공의회는 교황의 권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13세기까지 불과 일곱 명에 불과했던 추기경단은 16세기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확대하여, 1578년까지 인원수가 놀라운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를 우려한 교황 식스토 5세는 추기경단의 인원수를 70명으로 제한했다. 20세기까지 이 관례가 지켜지고 있었지만, 교황 요한 23세가 이 제한을 철폐했다. 후임 교황 바오로 6세도 교황 선거 제도의 개혁을 단행하여, 80세 이상의 추기경은 교황 선거에 참가할 수 없다는 제한을 걸어두었다. 바오로 6세는 투표권을 가지는 추기경단의 인원수를 120명으로 지정하였지만, 요한 바오로 2세 시대에는 한때 이 인원수를 넘은 적도 있었다.
교황 선거의 시스템 고대 시대에 교황 즉, 로마 교회의 주교로 선택받는 자는 기독교를 신봉하는 모든 남성이었지만, 769년 이후에는 성직자만으로 그 자격이 한정되었다. 시대가 지나가면서 한층 더 한정되어 추기경단만이 자격을 가지게 되었다. 1179년의 제3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다시 교황 자격을 평신도에게까지 넓혔다. 1378년에 선택된 교황 우르바노 6세는 추기경단 이외로부터 교황으로 선택된 마지막 인물이 되었다. 로마 주교인 교황이라고 해도 별로 이탈리아 출신일 필요는 없다(실제로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 출신이었음).
그러나 교황으로 선택되어 이탈리아 이외의 지역에서 온 마지막 교황은 1522년의 하드리아노 6세였다. 오늘날에 사제품계 이상 성직자면 추기경 서임자격이 있다(대부분 주교만 선택받고 있다). 반면, 여성에게는 이제껏 교황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줬던 적이 없다. 중세에 요안나라고 하는 여교황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이것은 가공된 픽션에 불과하다.
1179년까지는 투표자의 과반수의 지지를 얻으면 교황으로 선출되었지만, 제3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투표의 3분의 2 이상의 득표를 얻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교황 선거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은 인정되지 못한다. 교황 선거에서는 투표자의 익명성을 지키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투표를 막는 교묘한 시스템을 만들어내 왔다. 교황 비오 12세는 필요한 득표 수를 3분의 2+1표로 고쳤다. 베네딕도 16세는 2008년의 사도좌 공석과 교황 선출에 관한 교황령 《주님의 양떼 (Universi Dominici Gregis)》에서 시스템을 한층 더 고쳐 다시 필요 수를 3분의 2 이상 획득으로 확정하였다.
일찍이 교황 선출에는 세 가지 방법이 존재해 왔다. 첫째는 발성에 의한 결정, 둘째는 타협에 의한 결정, 마지막은 투표에 의한 결정이다. 발성에 의한 결정이란, 추기경들이 새로운 교황이 될 사람의 이름을 만장일치로 동시에 불렀을 때 그 결과를 성령이 개입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타협에 의한 결정은, 선거가 수렁화할 것 같다고 판단되면 추기경 중에서 선거 위원회를 골라내 선출을 주도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투표에 의한 결정은 이른바 지금의 교황 선거로 이해되는 것으로서 모든 추기경이 익명 투표를 반복하며 교황을 골라내는 방식이다. 덧붙여 발성에 의한 만장일치로 선출된 마지막 교황은 1621년에 선출된 그레고리오 15세이며, 선거 위원회의 주도로 선택된 마지막 교황은 1316년에 선출된 요한 22세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오랫동안 기능을 하지 않은 채 형식화되어 있던 앞의 두 가지 방법을 정식으로 폐지하고, 투표에 의한 결정만을 인정했다.
오늘날의 교황 선거 교황 선거에 관한 최신 규정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 헌장 《주님의 양떼》이다. 이 규정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의 관습을 정리하여 시대에 맞지 않은 부분만 수정한 것이다. 이 헌장에서, 추기경단은 전처럼 시스티나 성당에서만 밀집 생활을 할 필요가 없으며,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신축된 성 마르타의 집이라고 하는 숙소에서 생활하면서 시스티나 성당에 투표하러 가는 것으로 고쳐졌다.
주교급 추기경만이 될 수 있는 수석 추기경에게는 교황 선거에서 몇 가지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만약 수석 추기경이 연령 제한에 의해 선거에 참가할 수 없는 경우에는 차석 추기경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차석 추기경도 참가할 수 없는 경우에는 주교급 추기경 중에서 최고 선임자가 대신 역할을 행한다.
추기경단의 규모 자체가 생각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인원수를 더 많이 해서 교황을 선택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의견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오늘날과 같이 추기경단에 선거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주교회의에 맡기는 편이 좋다고 하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규정상 주교회의를 소집할 수 있는 사람은 교황뿐이다. 《주님의 양떼》에서는 시노드뿐만 아니라 공의회조차 교황이 선종할 시에는 일단 휴회하고, 새로 선출된 교황에 의한 재개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관련 절차
교황의 선종에서부터 선거까지 교황이 선종하면 교황 궁무처장(Camerlengo)이라는 직위에 있는 추기경이 입회한다. 궁무처장은 교황이 생전에 지명해 둔 추기경이며, 교황 부재 시에 지시를 내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교황이 선종했다고 판단되면, 궁무처장이 은망치로 교황의 이마를 살살 두드리며 세례명으로 세 차례 부르고 반응이 없다고 판단되면 죽음을 확인하는 의식이 행해지고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행해졌던 적이 없다.
《주님의 양떼》에서는 단지 교황청 전례 위원장과 성직자단의 대표, 교황의 비서, 사도단의 단장 등 80살 이하의 고위 성직자가 입회하여 확인하는 것만을 요구하고 있다. 확인이 끝나면 궁무처장은 어부의 반지라고 불리는 교황의 황금 반지를 교황의 손가락에서 빼내 추기경단 앞에서 그것을 파괴한다. 어부의 반지에는 교황이 작성한 문서에 찍는 인감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교황의 선종이 발표되면 추기경단은 전원 집합하여 회합을 열어, 교황 선거에 관한 일정을 결정한다. 이 회합에는 80세 이상의 추기경은 참가하지 않아도 좋지만, 원한다면 참가할 수도 있다. 교황 장례 미사는 사후 4일부터 6일간에 걸쳐 행해진다. 그 후, 교황청 전체가 9일간의 애도기간을 갖는다. 이것을 라틴어로 9일을 의미하는 노베디아레스라고 한다. 교황 선거는 통상 교황 사후 15일 이후에 행해진다. 모든 추기경이 다 모이지 않는 경우, 선거 개최일을 많게는 20일까지 늘릴 수 있다.
교황의 사임에서부터 선거까지 교황이 스스로 물러난다고 할 경우 교황 본인이 물러나고 싶은 날짜를 스스로 선택한뒤 당일 새벽 4시부로 교황직에서 공식적으로 사임이 된다. 그 이후 부터는 선종직후와 마찬가지로 문서위조 방지를 위한 어부의 반지 반납해야하고 이를 부수어야한다. 또한 추기경단이 집합한 뒤 회합을 결어 교황선거에 관한 일정을 결정한다. 이 경우에는 교황 본인이 스스로 물러난 경우이므로 사임발표뒤 전세계 추기경들에게 공식 사임전에 미리 투표날짜를 정하여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이롭다고 할 수 있겠다.
《주님의 양 떼》에서 콘클라베 개시 시점을 명시한 조항은 제37조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콘클라베는 교황의 선종이나 사임으로 사도좌가 공석이 된 지 15~20일 사이에 개시해야 한다. 만 15일을 기다리는 것은 아직 로마에 도착하지 않은 추기경들을 위한 배려다. 하지만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때 즉, 사임하기 전인 2013년 2월 25일, 자의교서(Motu Proprio)를 발표하여 제37조에“모든 선거인 추기경이 도착하면 선거 개시를 앞당길 권한도 있다”는 문항을 추가함으로써 일정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했다.
선거 개시 선거 당일 날 아침, 추기경단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여 미사를 올린다. 오후에는 바티칸 궁전 내의 파올리나 예배당에 집합하여 성령의 도움을 바라는 성가인 '오소서, 성령님'(Veni Creator)을 부르며 선거 장소인 시스티나 성당으로 이동한다. 시스티나 성당의 추기경 좌석에는 교황령 <주님의 양 떼>와 <콘클라베 예식서>(Ordo Rituum Conclavis), 시간전례서(성무일도)가 구비되어 있다. 성당에 도착한 추기경들은 한 명씩 선서를 한다. 선서 내용은, 만약 자신이 선출되었을 때는 성좌의 자유를 수호할 것, 선거의 비밀을 지킬 것, 투표에 대해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서약은 먼저 추기경단 단장이 서약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교황 선거에 참석한 우리 추기경들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단체로서, 1996년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령 《주님의 양떼》의 규정들을 충실하고 철저하게 준수할 것을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서합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 가운데 누가 하느님의 섭리로 교황에 선출되든 보편 교회의 사제로서 베드로의 교의(敎義)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과 교황의 영적·세속적 권리와 자유를 힘껏 지지하고 보호할 것을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서합니다. 특히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로마 교황 선출과 관련된 모든 것에 관한, 그리고 선출 장소에서 발생한 것에 관한, 직접적 내지는 간접적으로 투표 결과와 관련돼 있는 비밀을 엄수할 것을 충심을 다해 모든 사람과 함께 약속하고 선서합니다. 우리는 이 비밀을 어떤 식으로든, 새 교황 선출 중이든 선출 후든, 선출된 교황의 분명한 허가가 없는 한 깨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선서합니다. 어떤 계층이나 지위의 세속적 권위 그리고 단체나 개인이 교황 선출에 개입하려 하더라도 모든 간섭이나 반대 또는 다른 형태의 개입에 대해서도 결코 지지하거나 찬성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선서합니다."
추기경단 단장의 서약문 낭독 후 다른 추기경들도 각각 품급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서한다.
“그리고 나 (이름)는 그와 같이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서합니다.” 이어 추기경들은 한 사람씩 복음서에 손을 얹고 “하느님과 이 거룩한 복음은 저를 도와주소서.”라고 말한다.
선서가 끝나면, 교황청 전례위원장은 "외부인 전원 퇴장"(Extra omnes)을 선언하고 추기경단 이외의 사람은 성당 밖으로 퇴장한다. 유일하게 예외인 사람은 교황청 전례 위원장과 설교를 담당한 성직자이다. 그는 남은 추기경단을 향해 오늘날 교회가 내포한 문제와 새로운 교황에게 요구되는 자질에 대해 설교한다. 이것이 끝나면, 전례 위원장과 설교자도 퇴실하여 추기경단만이 남는다. 추기경 단장의 주도 아래 문답을 통해 선거법에 의문이 없는지 확인한다. 의문이 없으면 선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시작 전에 투표와 개표를 진행할 계표인과 검표인도 추기경단 중에서 추첨으로 결정한다.
선거는 수석 추기경이 콘클라베를 주재하게 되어 있으나, 수석 추기경이 선거권이 없으면 차석 추기경이, 차석 추기경도 선거권이 없으면 일반적 서열에 따라 선거인 추기경 중 최고령 추기경이 주재한다. 투표 개시에 늦었던 추기경은 해당 선거에 참가할 수 없다. 선거 중에 병환 탓에 건강이 나빠지면 퇴실할 수 있다. 그 경우에는 회복하고 나서 선거에 돌아올 수 있지만, 병 이외의 이유로 퇴실했을 때는 이후의 선거에 참가할 수 없다.
추기경단 이외에 교황 선거 중에 추기경들과 만나거나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추기경의 비서, 교황청 전례 위원장, 의식장 등이며, 국제어에 능통한 몇 사람의 고해 사제, 두 명의 의사, 요리사나 청소원뿐이다. 추기경뿐만이 아니라 스태프 전원이 선거의 진행이나 내용에 대해 중대한 비밀을 지킬 의무를 지니고 있다. 특히 추기경단은 외부와의 접촉이 엄중하게 금지된다. 《주님의 양떼》에서는 특히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의 미디어와 절대 접촉하지 말 것을 다짐하고 있다. 실제로, 2005년의 콘클라베에서는 추기경단의 숙소인 성 마르타 숙소에 전화나 인터넷 회선이 절단되어 성 마르타 숙소와 시스티나 성당에는 휴대전화 사용이나 도청을 방지하기 위한 방해전파가 흐르는 등 전자적으로 경계 태세를 강화하였다.
투표 투표는 소정의 용지에 무기명으로 행해진다. 투표용지 상단에는 'Eligo in Summum Pontificem'라는 라틴어 문구가 적혀있는데 이것은 '나는 이 사람을 최고의 교황으로 선택한다.(I elect as supreme pontiff.)'는 뜻이다. 용지 하단에 선거인이 뽑고자 하는 이름을 쓰게 되어 있다. 추기경들은 투표지에 기표한 뒤, 두 번 접은 투표지를 위로 치켜들고 서열 순으로 제대 앞으로 나아가 "나를 심판하실 주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삼아 나는 하느님 앞에서 당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선거합니다"라고 맹세한 뒤 투표지를 집표함에 넣는다.
첫날 오후, 첫 번째 투표가 실시된다. 이 날 투표에서 결정되지 못하면 둘째 날 이후부터 1일당 오전 2회, 오후 2회로 합계 네 차례 투표가 실시된다. 3일째가 되어도 결정되지 않을 때는 하루 동안 투표를 중지하고 부제급 추기경의 최연장자에 의한 강화가 이뤄진다. 그럼에도 7회차 투표로 넘어가면 다시 투표를 즉각 중단하고 이번에는 사제급 추기경이 권고한다. 게다가 7회차 투표에서도 결정되지 않을 때도 같은 방법이 반복되어 이번에는 주교급 추기경의 연장자가 강화를 이끌어낸다. 그래도 결정이 되지 않으면 3명 이상인 후보자가 있을 경우 최소 득표자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어 마지막엔 2인의 후보자에 투표를 하며 무조건 2/3이상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선거한다. 단, 이 경우에는 최다득표자 2인에게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베네딕도 16세 규정)
투표가 완료되면 계표인들은 투표지에 기재된 이름을 확인하며 읽어주고, 선거인 전원이 득표 사항을 기록한다. 계표가 끝나면 투표지와 득표기록을 다시 점검한다. 투표지와 관련 기록 일체는 소각하며, 투표결과 보고서는 영구 봉인해 교황청 비밀문서고에 보관한다.
결정과 수락 투표가 끝난 후에는 표 집계, 표 수 검사, 투표용지의 소각이 차례대로 행해진다. 투표에 의해 차기 교황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외부에 알리고자 용지를 소각할 때 검은 연기가 나오도록 태운다. 만약 교황이 정해지면 하얀 연기를 내게 되어 있지만, 요한 바오로 2세를 선출한 1978년의 선거 이래, 검은색과 하얀색을 제대로 식별할 수 있도록 하얀 연기를 낼 때는 특수한 약품을 혼합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선출한 2005년의 교황 선거부터는, 교황이 결정된 경우 하얀 연기뿐만이 아니라, 성 베드로 대성전의 타종소리를 통해 군중에게 알리고 있다.
투표에서 필요한 표수를 획득한 추기경이 나오면 추기경단 비서와 교황청 전례 위원장을 성당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 수석 추기경은 후보자에게 교황직을 수락할지 말지를 묻는다. 이때 당선 후보자는 절차에 따라 세번을 거절한뒤 그 사람이 주교급이라면 그 시점에서 교황직을 받게 된다. 만약 사제급이라면 수석 추기경으로부터 주교 서품을 받은 다음, 교황직을 맡는다. 평신도가 선택되었을 경우는 수석 추기경이 사제 서품을 한 다음 곧바로 주교 서품을 거행한다.
535년 이래, 교황은 취임 시에 자신의 교황식 이름을 결정하는 관습이 내려오고 있다.
신임 교황은 선출 직후 ‘눈물의 방’으로 이름 붙여진 시스티나 성당 근처 조그만 방으로 안내되어 그 안에서 미리 준비한 세 가지 사이즈로 제작된 교황 전용 의복 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선택해 몸에 걸친다. 눈물의 방은 본래 제의실인데 선출됐을 때의 기분에 비유해서 붙은 별칭이다. 그 다음 복장을 갖춰 입은 교황은 추기경단이 대기하고 있는 성당으로 돌아와 궁무처장으로부터 새로운 '어부의 반지'를 받는다. 베드로 직무에 관한 복음서 구절을 읽고 짧은 기도를 바치고 나면 제단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의자에 앉아 추기경단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는다. 추기경들은 축하의 인사와 함께 순명을 서약한다. 그리고 나서 교황과 추기경단은 “테 데움”(Te Deum: 성 암브로시오의 사은 찬미가)을 함께 부르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제266대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서 새롭게 추가된 사항이 있는데, 선출된 교황이 성 베드로 성당 중앙의 발코니로 나오기 전에 바오로 성당에 들러 성체 앞에서 잠시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 발코니로 나와 “로마와 전 세계에” 축복을 보내는 절차를 행한다.
그 다음에는 부제급 추기경의 최연장자가 성 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 나와 하베무스 파팜, 즉 라틴어로 신임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발표한다.
Annuntio vobis gaudium magnum: Habemus Papam! Eminentissimum ac Reverendissimum Dominum, Dominum [이름], Sanctæ Romanæ Ecclesiæ Cardinalem [성], qui sibi nomen imposuit [교황명]. ("매우 기쁜 소식을 발표하겠습니다. 새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 지극히 탁월하시고 공경하올 분, 거룩한 로마 교회의 추기경 [본래 이름]이십니다. 이 분은 자신을 [교황명]로 명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교황이 발코니에 나타나 '우르비 에트 오르비'로써 전 세계에 첫 번째 축복을 내린다. 일찍이 교황은 삼중관을 머리에 쓰고 다녔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에 의해 이 대관 미사는 폐지된 상태다.
지난 110년간의 콘클라베 20세기 들어 소집된 콘클라베는 최소 이틀, 최대 닷새 동안 열렸으며 평균 기간은 3일이었다. AP 통신은 지난 100년간 열렸던 역대 콘클라베 진행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9]
◇ 1903년 7월 31일 ∼ 8월 4일 : 이탈리아 추기경 주세페 사르토 (비오 10세) 선출, 4일간 7차례 투표. ◇ 1914년 8월 31일 ∼ 9월 3일 : 이탈리아 추기경 지아코모 델라 시에사 (베네딕토 15세) 선출, 3일간 10차례 투표. ◇ 1922년 2월 2일 ∼ 2월 6일 : 이탈리아 추기경 아칠레 라티 (비오 11세) 선출, 5일간 14차례 투표. ◇ 1939년 3월 1일 ∼ 3월 2일 : 이탈리아 추기경 에우제니오 파셀리 (비오 12세) 선출, 이틀간 3차례 투표. ◇ 1958년 10월 25일 ∼ 10월 28일 : 이탈리아 추기경 안젤로 론칼리 (요한 23세) 선출, 4일간 11차례 투표. ◇ 1963년 6월 19일 ∼ 6월 21일 : 이탈리아 추기경 지오반니 바티사 몬티니 (바오로 6세) 선출, 3일간 6차례 투표. ◇ 1978년 8월 25일 ∼ 8월 26일 : 이탈리아 추기경 알비노 루치아노 (요한 바오로 1세) 선출, 이틀간 4차례 투표. ◇ 1978년 10월 14일 ∼ 10월 16일 : 폴란드 추기경 카롤 보이틸라 (요한 바오로 2세) 선출, 3일간 8차례 투표. ◇ 2005년 4월 18일 ∼ 4월 19일 : 독일 추기경 요제프 라칭거 (베네딕토 16세) 선출, 이틀간 4차례 투표. ◇ 2013년 3월 12일 ~ 3월 13일 : 아르헨티나 추기경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프란치스코) 선출, 이틀간 5차례 투표
교황의 선출 새 교황은 전임 교황의 선종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후 15일~20일 이내에 선출된다. 교황의 선출은 세속 선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뿐 아니라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세계 곳곳에 널리 알려진다.
라틴어로 '열쇠로 잠근다'는 뜻의 콘클라베라 불리는 교황 선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스티나 경당에서 이루어지며 국적이나 출신 등에 관계없이 80살 이하 전 세계의 모든 추기경들이 투표에 참석한다. 외부와의 소통이 일제히 단절된 채 추기경들은 매일 두 번의 비(非)공개 투표를 하며, 그 결과는 전통적으로 짚이나 종이를 태워 알리게 되어 있다. 짚은 검은 연기를 내고 종이는 하얀 연기를 내는데, 연기는 시스티나 경당 내부의 작은 굴뚝을 통해 경당 정면 오른편에 있는 박공 앞의 한 지점으로 뿜어져 나온다.
경당 밖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연기의 색깔로 새 교황의 선출 여부를 알게 된다. 검은 연기는 새 교황이 아직 뽑히지 않았다는 신호이고, 하얀 연기는 새 교황이 뽑혔다는 신호다.
새 교황을 언제까지 뽑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바티칸 역사상 가장 오래 걸렸던 교황 선거는 교황 클레멘스 4세의 후임을 뽑는 콘클라베로 1268년에 열려 2년 9개월에서 이틀이 더 걸린 1271년에야 끝났다.
새 교황이 확정되면 그는 "수용한다(Accepto)."는 답변으로 공식 확인하고, 수석 추기경이 회랑 가운데로 나와 군중에게 새 교황의 이름을 발표한다. 그러면 새 교황이 제단사들이 미리 준비한 임시 제의를 입고 군중 앞에 나타나 ‘로마 시와 전 세계에게’를 의미하는 라틴어 ‘우르비 에트 오르비’라는 말로 첫 축복을 준다.
만일 새로 선출된 교황이 주교품을 받지 않은 사람일 경우, 추기경단의 수석 추기경은 선출된 교황 당선자에게 주교품을 서품하며 당선자는 주교품을 받은 때부터 로마 주교가 되는 동시에 교황이 된다 (참고로 로마가톨릭 교회법은 주교품서품대상자는 35세이상인 사제품을 수품받은후 5년이상인자로 규정하고 있다) 교황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국적을 가져도 상관없다. 역대 교황 가운데 210명은 이탈리아 출신이었고 이 중 99명은 로마 출신이었다. 나머지 56명은 프랑스 출신 16명, 그리스 출신 12명, 독일 출신 8명, 시리아 출신 6명, 팔레스타인과 스페인, 아프리카 출신 각 3명 등이다. 잉글랜드, 포르투갈, 네덜란드, 폴란드, 아르헨티나가 각 1명이다.
이름 교황 선거에서 차기 교황으로 선출된 당선자는 교황직 수락 의사를 밝히면서 즉시 자신의 본명을 버리고 평소 존경하던 성인이나 전임 교황의 이름을 골라서 자신의 교황명(敎皇名)으로 삼아 공표해야 한다. 새 교황의 이름은 수석 부제 추기경이 곧바로 성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서 선출 사실과 함께 공포한다.
역대 교황명 가운데 가장 많이 선택된 것은 '요한'으로 지금까지 통틀어 23명의 교황이 이 이름을 선택하였다. 그만큼 가장 인기가 있으나 ‘요한’이라는 이름의 교황들이 가장 많이 시해당하거나 유폐되는 등 교회 역사상 가장 불행한 사건들이 이 이름과 관련이 깊어서 교황 요한 23세 이전에는 거의 7세기에 가깝도록 ‘요한’이라는 이름을 택한 교황이 없었다.
'요한' 다음으로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이름은 '그레고리오'와 '베네딕토'로 둘 다 총 16명이 있으며, ‘클레멘스’는 14명, ‘레오’ 및 ‘인노첸시오’는 13명, ‘비오’는 12명 등이다. ‘베드로’는 초대 교황인 베드로만을 위해 쓰도록 정해져 있다. 베드로를 향한 예수의 명명(마태 16,18)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라고 한다.
교황들 가운데 처음으로 개명한 이는 교황 요한 2세로, 본래의 이름인 메르쿠리우스가 이교도의 신을 딴 이 이름이기 때문에 교황으로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해 '요한 2세'로 이름을 바꿨다. 반면 원 세례명을 그대로 유지한 교황은 16세기의 하드리아누스 6세가 유일하다.
교황이 되면 달라지는 것 ○ 자신의 이름, 이전의 국적 및 시민권을 버려야 한다. ○ 일상생활에서 때로는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전부 규제를 받는다. ○ 일주일에 한 번씩 고해 사제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 교황의 고해성사를 담당하는 사제는 예수회 사제이다. 고해 사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진 시간에 바티칸을 방문하여 교황이 고백하는 죄를 듣고 사해 준다. ○ 교의상 로마 가톨릭 교회 전체를 통솔하는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다. 교회 안 모든 법령은 교황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교황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 선례를 따를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다. 전통을 폐지하고 교회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수 있으며, 교서를 발표할 수 있고, 협의를 거치지 않고도 교회 안 규정을 바꿀 수 있다. 어떤 문제들에 관해서는 추기경단의 자문과 충고를 받도록 되어 있지만, 모든 일에 있어 교황 자신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조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 인간이 하는 재판은 받지 않기에 법정에 소환되지 않을 권한을 갖는다.
교황의 상징들
삼중관(Triregnum) : 교황이 머리에 쓰는 관으로 일반 주교관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으로 전통적으로 교황의 즉위 미사 때 사용되어 왔다. 삼중관은 교황의 통치권, 신품권, 교도권을 상징하며, 또한 유럽의 어떤 군주들보다도 교황이 더 위대하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처음에는 왕관 두 개를 겹친 듯한 이중관 모양이었으나 1362년 교황 우르바노 5세 때부터 삼중관이 되었다. 1978년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는 세속적 권력의 상징을 담고 있다면서 삼중관을 쓰는 전통을 폐지함에 따라 오늘날에는 자취를 감추었다.
바쿨루스(Baculus) : 교황이 예식 때 쓰는 지팡이로 목장(牧杖)이라고도 한다. 이는 목자가 양을 칠 때 사용하던 지팡이에서 유래하며 목자의 직무와 권위를 상징한다. 일반 주교의 지팡이는 윗부분이 원형으로 구부러져 있는 반면 교황의 지팡이는 윗부분이 십자가 모양이다. 교황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인이라는 뜻이다.
팔리움(Pallium) : 양털로 만든 띠로 ‘잃었던 양의 비유’(루카 15,1~7)에서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오는 목자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교황의 명예와 자치권을 상징한다.
어부의 반지(Pescatorio) : 교황이 손가락에 끼는 황금 반지인데, 이 반지는 예수의 수제자였던 성 베드로가 어부였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어부의 반지는 공문서를 봉인할 때 쓰고, 교황을 알현하는 사람은 무릎을 꿇은 채 어부의 반지에 입을 맞추는 인사를 한다. 어부의 반지는 교황이 선종하면 은망치로 부수어 관에 교황의 시신과 같이 넣는다. 이는 해당 교황의 통치가 종식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음 교황은 새로운 반지를 맞추어야 한다.
하늘나라의 열쇠 : 성 베드로가 주저없이 예수에 대한 바른 신앙을 고백했을 때, 예수는 성 베드로에게 왕국의 문들을 열 하늘나라의 열쇠를 하사해 주었다(마태 16,13~19). 여기서 하늘나라의 열쇠는 지상의 권한을 상징하는 수위권을 상징한다. 그리고 성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이 그 권한을 계승하고 있다. 성 베드로가 열쇠를 잡고 있는 표현은 5세기 초부터 등장한다. 그러나 열쇠만을 분리해서 교황의 권위를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한 시점은 교황 인노첸시오 3세 이후이다.
교황에게는 교황을 상징하는 특별한 문장이 있다. 모든 교황들의 문장에는 삼중관을 포함되었지만, 베네딕토 16세의 문장에는 주교관으로 바꾸었다. 교황관 아래 방패의 배경에는 전통적으로 금열쇠와 은열쇠가 있는데, 이는 마태오 복음서 16장 18절~19절을 참고로 한 것으로, 지상과 천국에서 묶고 매는 교황의 능력을 상징한다. 따라서 교회 문장학에서 열쇠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교황으로서의 지위의 영적인 권위를 상징한다.
01 성 베드로 광장과 대성전, 1909년
02 1630년대의 광장, 비비아노 코타치의 그림
03 무솔리니 대로와도 접하는 베르니니의 광장은 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까지 확장되었다.
04 (성 베드로 대성전과 직면한) 성 베드로 광장과 네로 경기장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
The Sistine Chapel (Sandro Botticelli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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