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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금진 시인 /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by 파스칼바이런 2019. 2. 15.

2019' 제12회 웹진 시인

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賞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최금진 시인

 

 

 

 

혓바닥으로 붉은 장미를 피워 물고

조심조심 담장을 걷는

언어는 고양이

 

깨진 유리병들이 거꾸로 박힌 채

날 선 혓바닥을 내미는 담장에서

줄장미는

시뻘건 문장을 완성한다

 

경사진 지붕을 타 넘으면

세상이 금세 빗면을 따라 무너져 내릴 것 같아도

사람은 잔인하고 간사한 영물

 

만약 저들이 쳐놓은 포획틀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구름으로 변장하여 빠져나올 것이다

 

인생무상보다

더 쉽고 허무한 비유는 없으니

이 어둠을 넘어가면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달덩이가 있다

 

거기에 몸에 꼭 맞는 둥지도 있다

인간에게 최초로 달을 선사한 건 고양이

비유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니

흰 접시 위에 싱싱한 물고기 한 마리 올려놓는다

 

언어는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하늘로 달아나고

마을은 접시처럼 환하다

 

가장 높은 지붕 위엔 고양이 한 마리

발톱의 가시로 달덩이를 희롱하고

입으로는 붉은 장미꽃들을 활짝 피워낸다

 

야옹, 나는 장미다

 

계간 『문예바다』 2017년 가을호 발표

 


 

최금진 시인

충북 제천에서 출생. 1997년《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2001년 《창작과비평》 신인시인상 수상. 시집으로 『새들의 역사』(창비, 2007), 『황금을 찾아서』(창비, 2011),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창비, 2014)과 산문집 『나무 위에 새긴 이름』(쳔년의시작, 2014)이 있음. 2008년 제1회 오장환문학상, 2019년 제 12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 수상 등 수상. 동국대, 한양대 등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