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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정옥 시인 / 그러니까에 대한 반문

by 파스칼바이런 2019. 2. 15.

그러니까에 대한 반문

안정옥 시인

 

 

        그러니까 내 뜻 없이 이 사람과 저 사람이

        합해 내가 되었으니 나는 혼합물인 셈이지

        나는 나 인줄 알았는데 나인 것은 하나도 없었어

        그러니까 이 혼합물과 저 혼합물에 부대낀다는 것

        그건 비애였지

        이곳에서 멀리 도망친 날들을 손꼽아봐,

        그곳에는 엄청나게 푸근한 다름이 펼쳐질 줄 알았지

        그러니까 뚜벅뚜벅, 다시 혼합물의 세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그건 비정함이지

        그토록 애쓰며 살아야 겨우 산다하는 이곳,

        그러니까 한풀 꺾여 그렇게 한풀, 한풀,

        풀이 거의 죽은 뒤에야 끔찍한 나로 돌아오지

        사람들은 그후에야 사람답다고 말해주지

         

        나는 내 자신을 말해야될 때

        그러니까를 앞세워, 모든 일은 중간쯤에 막히는지

        생각할 시간을 좀더 많이 벌기 위해

        반듯이 그러니까를 쓰고있어

        무언가를 알아듣게 부연해줘야 하는 게 지겨워

        여전히 도망치고만 싶은 여기 혼합물의,

        그러니까 아직도 나는 그러니까에 근접해 있어

        그래서 지금도 중간쯤에 멈춰,

        생각할 시간을 좀더 많이 벌기 위해

        그러니까를 아직도 내 앞에 세우고 있긴 해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안정옥 시인

서울에서 출생. 1990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1993)와 『나는 독을 가졌네』(1995), 『웃는 산』(1999), 『아마도』(2009)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