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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병길 시인 / 것

by 파스칼바이런 2019. 2. 26.

강병길 시인

 

 

          시를 짓다가

          것이라는 말을 바라보니

          제법 낭비한 말이 것이었다

           

          독자가 적절한 의미를 대비시켜

          알아서 읽어주겠지라며 떠넘긴 말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부적인 양 척 붙여놓으면 은연중 힘이 실리던 말

           

          고것 참 신통방통하게

          써놓으면 만능열쇠처럼 척척 들어맞던 말

           

          밑도 끝도 없이 믿음이 가서

          명징과 천 리는 멀어도 믿고 쓰는 말

           

          문장을 써내려가다 벽에 막혀도

          판타지 영화 비밀의 문처럼 통과되는 말

           

          시의 나무에 겨우살이로 붙어

          또 다른 주인으로 살아가는 말

           

          모호하나 분명처럼 행세하는 말

          붙는 곳이 많아 누빌 곳이 많아

          담을 곳이 바다보다 넓어

          어디나 잘 붙어 눈치 없는 말

           

          어디든 잘 담겨 깊이 모를 말

          스스로는 목숨 없는

          숨죽이고 있다가 불쑥 나오는

          탁발승 바랑 속의 숟가락 같은

           

          나의 다음 시집이 폐허로 남아도

          결코 꺼내 쓰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라는 말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강병길 시인

2011년 시집 『도배일기』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