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유석 시인 / 처서(處暑)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9.

김유석 시인 / 처서(處暑)

 

 

혼자 살다 가는 사람의 유품 같은 날이었다.

 

울음과 울음 사이, 울음보다 긴 적요를 놓고 다음 생을 건너는 늦 매미 울음에

느릅나무 뜨겁던 그늘을 벗는 하오(下午).

 

가릴 것 하나 없이 편안한 외로움을 문간까지 열어 놓고

쓰다만 유서 같은 텃밭 베고 든 홀어미 오수(午睡)

 

유난히 매운 끝물의 고추 빛을 묻히고

메밀잠자리 날면 다시 메밀을 심을 때

 

걷으면 한철 기어 이르던 곳 넝쿨째 끌려 와

몇 날을 식는 제 몸 지켜보는 노란 오이 꽃망울 하나,

 

한 번 뿐인 생을 여러 번 다녀가는 듯한 날이었다.

 

웹진 『시인광장』 2016년 8월호 발표

 


 

김유석 시인

1960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 전북대학 문리대를 졸업.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신월기계화단지〉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상처에 대하여』(한국문연, 2005)가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