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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희진 시인 / 사이보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0.

조희진 시인 / 사이보그

 

 

그가 땅속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하는 덩굴 식물처럼 몇몇 사람들과 거처를 옮겨 다니고 있었을 때

귓속을 가득 매웠던 비명의 소리들

들리지 않는다는 것으로 그는 질문도 대답도 없는 마침표를 찍고 싶었습니다.

밤낮은 저글링을 하며 그를 배경으로 속도를 높이고

 

그에게는 연민과 연필과 불안을 메모할 종이밖에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연명의 한 방법은 무엇이든 구겨서 입에다 쳐 넣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단숨에 삼키고 입을 봉쇄하는 거였죠. 그의 뱃속에는 글씨가 빼곡히 적힌 수많은 종이들이 구겨져 소화되지 않은 채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옆구리가 미어져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옆구리에선 단내가 진동했습니다.

뢴트겐에도 그의 뱃속은 쉽사리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뒤통수를 그 누구에게도 물려줄 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곤돌라를 상상하다가 불빛 찬란한 스카이 트리로 올라가 뛰어내려 보았습니다. 아찔한 높이를 견뎌야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구름과 엉겼다 붙었다 하늘 한가운데서 바람에 휘날리는 애드벌륜과 한 몸이 되어 떠올랐습니다. 운동장, 유희, 이런 단어들로 축복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써 떠올리면 아득한 시간, 아득한 거리 불빛 가로등 가로등에 매달린 까치집. 책갈피속에서 잃어 버린 사진속의 얼굴들, 불투명했던 그가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습니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6월호 발표

 

 


 

조희진 시인

2013년 《시산맥》신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