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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용미 시인 / 지구의 마음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0.

조용미 시인 / 지구의 마음

 

 

밝고 어두운 줄무늬가 층층이 포개어져 나뭇잎을 눌러놓은 듯한 변성암처럼

켜켜이 쌓이고 눌린 지난 생의 격정은

 

비와 바람에 녹고 변하여

가느다란 띠무늬가 된 것 같다.

 

구름과 풀이 변하여 다른 세상의 무늬가 되는 시간

 

땅속의 나뭇잎이 암석이 되도록 변하지 않는

어떤 마음이 있다.

 

폐그물에 걸려 천천히 썩어가는 물고기들

옆으로 수초가 가만가만 자라났다.

 

무늬의 성분과 질량을 분석한다.

수억 년 전의 퇴적물처럼 뜨겁게 가라앉았다가 다시 천천히 밀려올라오는 기억들

 

그 시간을 고요히 반복했던 지구의 마음이 있었다는 걸

먼 훗날 누군가 알게 되겠지.

 

무언가 변하여 이루어진 저 띠무늬들은 변할 수 없는 것들이 모여 단단해진 것.

안과 밖이 다 변해야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것들은

 

내가 변하지 않아서 맞이해야 하는 이 파국은,

마침내 산산조각 나고 있는 이 얼굴은

 

계간 『시담』 2016년 가을호 발표

 

 


 

조용미(曺容美) 시인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기억의 행성』, 『나의 다른 이름들』과 산문집 『섬에서 보낸 백 년』이 있음. 김달진문학상과 김준성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