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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용하 시인 / 1분 후의 세계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0.

박용하 시인 / 1분 후의 세계

 

 

      사람 만나는 게 돌 만나는 것보다 흥미 없어

      젊은 시인들 시를 읽네.

       

      돌에는 무늬라도 있지

      천 년 물결 기억 무늬

      천 년 어둠 추억 무늬

       

      그렇다고 나는 돌 수집가가 아니라네.

       

      사람들 만나는 게 커피 만나는 것보다 깊이 없어

      젊은 시인들 시집을 밤늦도록 읽네.

       

      거기엔

      하나 마나 한

      제자리 높이뛰기 말들이

      헛바퀴 돌기도 하지만

      처음 듣는 목소리가

      피부를 뚫고 들어와 피와 함께 돌기도 하네.

       

      가장 좋은 시는

      지금 쓰고 있는 시

       

      가장 나쁜 시도

      지금 쓰고 있는 시

       

      지금 이 순간의 당신을 당신도 모르듯이

      오늘의 삶은 오늘도 모르고

      내일의 시는 내일도 모른다.

       

      보이는 풍경 너머

      보는 풍경

      더 멀리

      끝끝내 안 보이는 풍경 앞에서

       

      다음이 없는 만남이

      가장 좋은 만남이라는 것을 두고두고 모르는

      이번 만남처럼

       

      1분 후의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3분 후의 내가 어떻게 돌변할지

      1시간 후의 저 자두나무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듯

       

      내 속으로 들어가는 데만도 일생이 걸리고

      내 밖으로 들어가는데 또 일생이 걸리고

      그렇게 나는 너를 지나가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나 몰라라 하네.

       

      매일 초면인 해와 달

      매일 창세기인 바닷가

      매일 새로운 파도

      매일 다른 바다

       

      초록 잎사귀는 다 다른 초록 잎사귀

      빨간 앵두는 제각각 빨간 앵두

      눈물은 제각각 명암 눈물

       

      나무가 자라는 곳까지 가서

      뿌리는 나무를 박고

      나무가 자라는 곳까지 가서

      잎은 나무를 떠나고

      한 번 떠나간 머리카락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여벌이 없는 생사처럼

      인생은 한 번조차도 많다.

       

      1분이면 과분한가

      헛살았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1분이면 부족한가

      삶의 경이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우리가 알고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을 겨우 아는 것.

       

      아무리 멀리 가도

      발바닥에 닿는 것들을 노래하고

      머리카락에 연결된 것들을 상상한다.

       

      인간을 말하되

      인간만 말하지 않는다.

 

월간 『현대시』 2017년 1월호 발표

 

 


 

박용하 시인

1963년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 1989년 《문예중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른다』,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 『見者』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