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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순 시인 / 마지막 술래
아파트 맨 꼭대기 층에 사는 그녀, 안방으로 흘러드는 구름을 쫓아 발을 내딛다 길을 잃었다
온 몸이 길이었던 적이 있다 혈관이 온통 길이어서 세포 마디마디가 열리고 꽃이 피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할 적마다 꽃봉오리가 맺히고 탐스런 열매도 열렸다
음력 칠월, 뜨거운 수액을 제 살 속에 아낌없이 쏟아 부은 후 더 이상 그 놀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마지막 술래가 되던 날 꽃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구멍 난 빈 가슴은 바스락 바스락 소리를 냈다
달을 찾아 주세요, 창백한 목소리만 기울어질 뿐 붉은 꽃을 지닌 그림자는 오늘 벼랑으로 떨어져 내렸다
시집 『아버지의 휠체어』(문학과사람, 2017) 중에서
이정순 시인 / 저무는 일
제 몸에 나이테 하나 더 그어놓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수많은 음표들이 날아왔을 뿐 꿈길에서조차 부르던 이름들이 꽃잎처럼 나부꼈다
안개 낀 역마다 느리게 자라던 나무 그림자 동백꽃 언저리에 붉어진 눈시울 무심히 내리는 눈송이가 이별의 손수건처럼 뭉클하다
저무는 일, 낮은음의 건반을 누르는 것만큼 마음 안쪽이 서늘해도 오히려 지평선이 하늘과 뚜렷하게 경계를 이루고 새털구름을 따라 노을과 함께 내가 나로부터 점점 멀어져간다는 것
빛나는 것은 늘 떠오르는 태양과 한편 지나온 마디가 희미해질수록 깊어진 종소리 어느새 길이 되어버린 어둠 속 고요가 한 뼘이나 자라고 있다
시집 『아버지의 휠체어』(문학과사람, 201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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