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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기원 시인 / 심야극장의 그랑 블루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9.

강기원 시인 / 심야극장의 그랑 블루

 

 

      심야는 심연이다.

      불면이 일상인 자들의 심야극장.

       

      그가 내려간다.

      단 한 번의 숨으로

      해저

      50m

      70m

      100m

      .

      .

      .

      두껍게 출렁이는 물의 천장

      귀 먼 청동의 고독 속으로

      그가 내려간다.

      다정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그가 내려간다.

      홀로 객석에 앉아

      그를 보는 동안

      몸이 차가워진다.

      물 속은 따뜻하다고

      그가 말한다.

      검은 양수 속으로

      파랑(波浪) 없는 적막 속으로

      따라가는 동안

      앞자리 연인들은 입맞춤에 여념이 없다.

      눈 먼 심해어들의 짝짓기는 어떨까?

      우리 손가락 끝에는 비늘이 약간 남아 있다고

      키냐르는 말했지.

      영화는 데본기로 돌아가는

      생의 무거운 돌림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선형의 물 계단 짚어가는

      역진화의 시간 속으로

      지느러미 없이 가고 있다.

      다만 홀로, 끝없이

      가도 가도

      바닥 없는

      마리아나 해구 같은

      심야극장의 밤

      지상의 프리다이버

      나는 어느 지질시대의 어류인가?

 

계간 『시와 문화』 2017년 겨울호 발표

 

 


 

강기원 시인

1958년 서울에서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요셉 보이스의 모자〉 외 4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세계사, 2005)와 『바다로 가득 찬 책』(민음사, 2006),『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민음사, 2010), 『지중해의 피』(민음사, 2015)가 있음. 2006년  제25회 김수영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