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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경숙 시인 / 남방노랑나비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8.

김경숙 시인 / 남방노랑나비

 

 

입술을 열듯 창문을 열었다

 

서랍장 틈에서 갓 부화한 남방노랑나비 한 마리 손가락에 올려놓고 조심스레 창문 밖으로 옮겼다. 무거운 등짐을 진 것도 아닌데 무쇠 신발을 신은 것도 아닌데 벼랑길을 오르는 것 더욱 아닌데 발가락 바르르 떨리게 하는 날개 한 벌 무게가 천만근이다

 

날아다니는 것들은 제 무게를 온전히 책임지는 것들

 

입술 한 벌 처음 받을 때 떨리던

그 아찔한 연애 무게처럼

손가락 위에 앉은 봄의 발가락은 간지럽기만 하다

 

나비를 옮기는 일이

천만근 무게를 옮기는 역사(役事)

혹은 역사(力士)다

 

나비는 햇살 한 장 위에 앉아 제 날개에 묻은 물컹한 보호색무늬와 굼틀거리던 기억너머를 비비고 털며 말리고 있다

 

앵두꽃 무더기로 피어나는데

몸속에 열꽃들 일제히 피어나

숨 막히게 하던 입술 한 벌은 아직도 우화(羽化)중일까

 

나비를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내 입술 한 벌도 언제 날아갔는지 없다

 

계간 『포엠포엠』 2017년 겨울호 발표

 

 


 

김경숙 시인

2007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얼룩을 읽다』 등이 있음. 한국바다문학상과 해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