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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자 시인 / 크레바스
나는 너를 돌아본 적 있다 해바라기 씨를 심고 해바라기를 돌 듯 너를 심고 너를 돌 때 텅 빈 적막을 알았다 물 주는 시간을 알았다 해바라기처럼 눈 감는 시간을 알았다 세상 모든 정오에 샛노란 꽃잎도 까맣게 타죽으려는 것을 알았다 새들은 너무 펄럭이면서 나를 돌다 세상까지 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죽음 보다 더 많이 죽으려고 눈물방울이 허공을 뛰어내리는 것을 알았다 해바라기가 자라서 나를 돌고도 남을 때 말도 안되는 모국어로 커다랗고 둥근 꽃 한 송이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 있다 해바라기 베어낸 자리 해바라기가 빠져 죽은 크레바스 나는 여름에도 빙판 위를 달리는 여자 건너뛰다 보았다 보름달처럼 떠오르는 둥근 해바라기 꽃잎 한 여름에도 크레바스를 만들고 있는 너를 알았다 너도 나처럼 나를 돌고 있었다
격월간 『시와 표현』 2019년 1~2월호 발표
최문자 시인 / 다른 빵
미지근한 것들은 불길해 매일매일 이곳에서 미지근한 빵을 먹으며 지냈다 미지근한 욕조의 물처럼 미지근한 기도처럼 그 날 데모 군중 끝에서 미지근한 얼굴로 따라가던 어떤 시인처럼 가장 늦게 남아있는 나의 온도, 무슨 정말인 것처럼 날마다 멀리서 나에게 오고 있다 이렇게 생각이 다른 빵을 먹고 내 시는 멸망할 수도 있어
미지근한 것을 꽉 깨무는 순간 세상은 맹세처럼 시고 달고 짜고 매운 혀가 넘쳐난다 저마다 다른 빵을 찾는다 세상의 혀는 왜 자꾸만 정확해지는걸까 기다리지 않아도 돌아오는 생일, 그 것 조차 나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모서리 없는 미지근한 빵 생일 축하케익을 자른다
다른 빵을 먹고 섬광이 되고 싶다 미지근함으로 부터 탈구된 단 한 줄의 시라도
계간 『미네르바』 2019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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