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시인 / 어젯밤 꿈에 저는 창부가 되어
어젯밤 꿈에 저는 창부가 되어 얼굴 예쁜 사내의 품에 안기어 저를 기다리시는 당신을 못 본 척 고개를 숙이고 지나쳤지요
당신은 멀리서 저를 따라오시고 저는 일부러 대문을 열어두고 당신이 제 집에 발을 들이신 것은 비가 얼마나 더 오신 후던가요
저는 장지문을 살며시 열고 생글생글 웃음을 지어보이며 제 방에 그 사내가 머물러 있는듯이 이곳은 당신이 오실 곳 아니라고
여름비는 앞뜰의 꽃창포를 적시고 당신은 그린 듯이 마당에 서 계시고 저는 꿈에서도 꿈 아닌 것처럼 당신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고
시간은 어느덧 저녁으로 이울고 슬픔은 이내처럼 마당에 내려앉고 당신이 말없이 저를 건너 보실 때 저는 두 뺨에 눈물을 흘리면서
이제 그만 다른 일 찾으시라고 저도 차마 당신을 잊겠노라고 당신은 눈빛으로 저를 나무라시고 어둠 속으로 홍등은 밝아오고
계간 『문학·선』 2010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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