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석 시인 / 자책한 과부가 부과한 책자 -전대미문의 문미대전
회문(回文)국 국왕 론의 주검을 뒤집어 검시하자 굴이 발굴됐다 굴은 총길이 416m 창자, 기나긴 악몽의 해협이었다 야음에 비밀잠수함이 지나가는
론의 눈에서 독 묻은 탄환 나왔다 탄환은 웃으며 자기는 론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론의 찢긴 목구멍에선 푸른 가시벌레들이 계속 기어 나왔다 항문에선 죽은 흰개미들이 쏟아졌고
신하들은 국왕의 죽음을 미화할 전대미문의 문미대전을 대대적으로 작란하기 시작했다 굴에선 계속 흡혈박쥐들이 날아올랐고 왕국의 하늘은 황량한 노을로 뒤덮인 위조지도가 되어갔다
검시관이 론의 입에 손을 넣었을 때 처음 닿은 것은 물컹한 혀, 그것은 흑갈색 파도가 문신된 13cm 페니스였다 론의 성기는 죽어서도 웃고 있었다 그 소름끼치는 말뚝웃음 저편 까마득한 저승의 서해에서
몰살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밀물로 울려왔다 바로 그때 왕국의 수도 바위산 아래 론의 일가가 살던 푸른 기와의 궁궐이 보였다 궁은 나풀거리는 회문(回文)의 책자였고 13부로 되어 있었다
1부 건조할 조건 빨간 속눈썹 달린 개 두 마리가 거울 앞에 선 여왕의 궁둥이를 킁킁거리며 살살거렸다 호호 Madam I'm Adam 호호 밥그릇처럼 무덤만 즐비한 벌판을 바라보며 여왕은 독백했다 꽃도 염문도 법도 역사도-다들 잠들다
2부 위대한 대위 웃는 백치여왕 adada 목엔 두 개의 장식용 머리가 달려 있었다 여야처럼 좌우처럼 전쟁은 불길이 끝나지 않고 정치적 섹스는 계속되었다 오래전 아버지 론이 대공조사실에서 어린 열사들의 눈을 태워 빨강괴물 그림자놀이를 즐길 때처럼
3부 다 모호한 호모다 왕은 왕이어서 왕왕 Cooing과 Babbling 혼자만 놀았다 그리하여 <나>라는 <나라>는 항문 가득 파리가 알을 슨 변사체 그리하여 역사는 발작 중인 회문(回文)의 회문(會文) 입과 꼬리가 뒤바뀐 하마처럼 뇌물 먹다 뇌에 물이 괸 코 없는 코끼리처럼 끼리끼리
핏기 없는 꿈들이 날마다 서해로 흘렀다 굴을 다시 뒤집자 론의 텅 빈 폐에 백야의 어둠이 가득했다 론의 사체에서 독재자 론(Lone)이 대를 이어 부활했고 회문(回文)국의 모든 음악과 춤과 시는 검은 감옥에 투옥되어
어두운 회문(回問)이 되어갔다 거리마다 죽은 아이를 안은 여자들이 실성한 버드나무처럼 거닐었다 그들은 모두 무덤을 빠져나온 핏덩어리 구름들 불구의 땅이 낳은 불구의 해와 달과 별
<나>라는 <나라>는 눈알이 검게 썩어들었다 그리하여 아홉의 검시관은 전대미문의 시체사건을 최종 판결했다 대지엔 론의 기나긴 악행이 음담의 패설로 새겨졌고 땅의 곰팡이들이 빠르게 하늘로 번져갔다
곰팡이들의 미친 웃음소리 따라, 야사의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고 죽어서도 눈이 감기지 않는 아이들은 모두 물새가 되어 굴의 폐쇄된 해저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마침내 굴의 반대편이 나왔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촛불이 타는 반도였다 반도는 자책한 과부가 부과한 거대한 피의 책자였고 또 다른 전쟁으로 4부 5부 6부 이후의 모든 서사는 불타 있었다
월간 『현대시』 2017년 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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