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추인 시인 / 시간을 위한 거울 오브제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23.

김추인 시인 / 시간을 위한 거울 오브제

—매혹을 소묘하다

 

 

산그늘과 구름그늘 사이엔 거울이 있고

밀밭내와 논두렁 풋콩내 사이 누가 가고 있다

네 시와 다섯 시 사이

긴 그림자를 끌고 누가 거울 속을 가고 있다

 

느티목 그루터기에 앉아 나이테를 읽는 눈

길고 연한 하절무늬와 짧고 촘촘한 동절무늬 사이

아른아른 유리의 길을 따라가며 읽는다

흔들리고 꺾이며 폭풍우와 맞서던 시간을

햇살과 물소리와 눈발 비껴나는 시간을

 

봄에서 겨울까지 그리고 다시 봄

흔들림과 무심, 포만과 궁핍을 베껴본 나무는

제 나이테 사이에 시간의 옷을 새기는 것

 

초록과 회록 사이에 누가 흔들흔들 가고 있다

언제였더라

부끄러움과 설렘 사이를 거울이 응시하던

풀내 나는 육체의 남녘은

몹시 흔들리는 반 추상체의 나무 두 그루

 

꿈에서 꿈으로 길을 내던 거울 속 구름의 시간들

뇌실 어느 기억의 빗금 사이에 앉아 잔물지고 있겠다

아릿아릿 혹은 촘촘촘

 

계간 『미네르바』 2015년 가을호 발표

 

 


 

김추인 시인

경상남도 함양에서 출생.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1986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온몸을 흔들어 넋을 깨우고』, 『나는 빨래예요』, 『광화문 네거리는 안개주위보』, 『벽으로부터의 외출』, 『모든 하루는 낯설다』, 『전갈의 땅』, 『오브제를 사랑한』 등이 있음.  2016년 제9회 한국예술상 수상, 1991년 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금 수혜. 2010년 만해‘님‘문학상작품상 수상, 2011년 서울 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2016년 한국의 예술상 수상, 2017년 제8회 질마재문학상 수상. 현재 무크지 『님』 편집위원, 계간 시전문지 『포엠포엠』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