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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도언 시인 / 사실주의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23.

김도언 시인 / 사실주의

 

 

  완전무장한 동네 아이들이

  해바라기를 포위했다

  눈 없고 팔이 가는 아이들이

  늙은 해바라기를 포위했다

  아이들은 인디언처럼 이마를 두드리며

  불규칙적으로 울음을 터뜨리고

  겁에 질린 해바라기는 벌벌 떤다

  거짓말처럼

  해바라기의 허리가 꺾인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해바라기에게 견딜 수 없는

  공포가 되었다

 

  완전무장한 동네 아이들이

  빨간 우체통을 포위했다.

  눈 없고 팔이 가는 아이들이

  실어증을 앓는 우체통을 포위했다

  아이들은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드러낸다

  바지를 내리고 흰 엉덩이를

  드러내면서 우체통을 위협한다

  거짓말처럼

  우체통이 쿵 쓰러진다

  아이들의 흰 엉덩이가

  우체통에게 견딜 수 없는

  공포가 되었다

 

  허리가 꺾인 해바라기와 쓰러진 우체통은

  의지가 없어 편안해 보인다

  아이들이 나란히 걸어가며

  노래를 부른다

 

웹진 『시인광장』 2015년 10월호 발표

 

 


 

김도언 시인

1972년 충남 금산에서 출생.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  저서로는 소설  『철제 계단이 있는 천변풍경』, 『악취미들』, 『랑의 사태』 등과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꺼져라 비둘기』 등과 경장편소설 『미치지 않고서야』 등이 있음.  2012년 《시인세계》 신인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