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언 시인 / 사실주의
완전무장한 동네 아이들이 해바라기를 포위했다 눈 없고 팔이 가는 아이들이 늙은 해바라기를 포위했다 아이들은 인디언처럼 이마를 두드리며 불규칙적으로 울음을 터뜨리고 겁에 질린 해바라기는 벌벌 떤다 거짓말처럼 해바라기의 허리가 꺾인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해바라기에게 견딜 수 없는 공포가 되었다
완전무장한 동네 아이들이 빨간 우체통을 포위했다. 눈 없고 팔이 가는 아이들이 실어증을 앓는 우체통을 포위했다 아이들은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드러낸다 바지를 내리고 흰 엉덩이를 드러내면서 우체통을 위협한다 거짓말처럼 우체통이 쿵 쓰러진다 아이들의 흰 엉덩이가 우체통에게 견딜 수 없는 공포가 되었다
허리가 꺾인 해바라기와 쓰러진 우체통은 의지가 없어 편안해 보인다 아이들이 나란히 걸어가며 노래를 부른다
웹진 『시인광장』 2015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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