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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진희 시인 / 타이어 연대기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24.

김진희 시인 / 타이어 연대기

 

 

  굴러갈 수 없는 바퀴

  멈춘 바퀴는 더 이상 존재가 아니다

  평생 노동을 끌고 다니며

  우툴두툴한 바닥을 수도 없이 부딪히며 살아왔으나

  굴러가는 일 당연하다며

  그 고단한 노동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았다

  기계인 삶은 감정도 자존심도 모두 버리고 살아야 하는 것

  오로지 벌어야 하는 이유만 있었지

  어느새 바람도 빠지고 바퀴가 다 닳아버린 땅끝에서

  풀썩 그렇게 인생 하나가 펑크가 났다

  멋대로 세상을 휘젓고 다니던 직립의 생애가 동그랗게 말렸다

  살아야 했으므로

  버텨야 했으므로

  그로 인해 묵직해진 삶을 한순간에 주저 앉힌 생애라는 것

  거칠고 어수선했으므로

  사는 동안 수도 없이 절름거렸을 생애라는 것

  그리하여

  그리하므로

  그리했으므로

  그리해야 하므로

  시간 앞에 무릎을 꺾고 또다시 무거운 적층의 바퀴를 돌려야만 하는

  또 누군가의 생애라는 것

 

계간 『포엠포엠』 2017년 가을호 발표

 

 


 

김진희 시인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 2011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상처에 대응하는 방식』(문학의전당, 2015)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