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銀 시인 / 폐결핵(肺結核)
1 누님이 와서 이마맡에 앉고, 외로운 파-스·하이드라짓드 병(甁) 속에 들어 있는 정서(情緖)를 보고 있다. 뜨락의 목련(木蓮)이 쪼개어지고 있다. 한 번의 기인 호흡이 창의 하늘로 삭아 가 버린다. 오늘 하루의 이 오후(午後) 늑골(肋骨)에서 두근거리는 체온의 되풀이 머나먼 곳으로 간다. 지금은 틀거울에 담은 기도(祈禱)와 아래 얼굴, 모든 것은 이렇게 두려웁고나. 기침은 누님의 간음(姦淫), 언제나 실크빛 연애(戀愛)나 나의 시달리는 홑이불의 일요일(日曜日)을 누님이 보고 있다. 누님이 치마끝을 매만지며 화장(化粧)얼굴의 땀을 닦아 내린다.
2 형수는 형의 말씀을 해준다. 형수의 묵은 젖을 빨으며 고향의 병풍(屛風)아래로 유혹된다. 그분보다도 이미 아는 형의 반생애(半生涯), 나는 모르는 척하고 눈 감아 버린다. 영웅(英雄)이 떠오르며 영웅을 잠 재우는 미인(美人), 형수에게 드넓은 우리 농지(農地)를 물어보려 한다. 쓸쓸히, 고개에 녹아가는 눈 허리의 명암(明暗)을 씻고 그분은 나를 본다. 혓바닥 작은 카나리아 핏방울을 구을리며
자고 싶도록 밤이 간다. 형의 사후(死後)를 잊는다. 형수는 밤의 부엌 램프를 나에게 맡기고 간다.
월간 《현대시》 1958년 창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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