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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高銀 시인 / 폐결핵(肺結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7.

高銀 시인 / 폐결핵(肺結核)

 

 

  1

  누님이 와서 이마맡에 앉고,

  외로운 파-스·하이드라짓드 병(甁) 속에

  들어 있는 정서(情緖)를 보고 있다.

  뜨락의 목련(木蓮)이 쪼개어지고 있다.

  한 번의 기인 호흡이 창의 하늘로 삭아 가 버린다.

  오늘 하루의 이 오후(午後)

  늑골(肋骨)에서 두근거리는 체온의 되풀이

  머나먼 곳으로 간다.

  지금은 틀거울에 담은 기도(祈禱)와

  아래 얼굴,

  모든 것은 이렇게 두려웁고나.

  기침은 누님의 간음(姦淫),

  언제나 실크빛 연애(戀愛)나

  나의 시달리는 홑이불의 일요일(日曜日)을

  누님이 보고 있다.

  누님이 치마끝을 매만지며

  화장(化粧)얼굴의 땀을 닦아 내린다.

 

  2

  형수는 형의 말씀을 해준다.

  형수의 묵은 젖을 빨으며

  고향의 병풍(屛風)아래로 유혹된다.

  그분보다도 이미 아는 형의 반생애(半生涯),

  나는 모르는 척하고 눈 감아 버린다.

  영웅(英雄)이 떠오르며

  영웅을 잠 재우는 미인(美人),

  형수에게 드넓은 우리 농지(農地)를 물어보려 한다.

  쓸쓸히, 고개에 녹아가는

  눈 허리의 명암(明暗)을 씻고 그분은 나를 본다.

  혓바닥 작은 카나리아 핏방울을 구을리며

 

  자고 싶도록 밤이 간다.

  형의 사후(死後)를 잊는다.

  형수는 밤의 부엌 램프를

  나에게 맡기고 간다.

 

월간 《현대시》 1958년 창간호 발표

 

 


 

高銀(고은) 시인

본명 고은태(高銀泰). 1933년 전라북도 군산에서 출생. 1958년 《현대시》 창간호에 〈폐결핵〉을 발표하며 데뷔.  1960년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을 간행. 1962년 스님에서 환속. 시인이며 재야운동가로 활동.  데뷔 이후 시, 소설, 평론 등 120권의 저서를 발표. 영어, 독어, 불어, 일어 등으로 번역된 저서가 다수 있음.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 시절 '실천문학' 창간.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1988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초대의장, 199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의장, 1994년부터 경기대 대학원에서 교수로 역임. 1999년 미 하버드대 옌칭스쿨과 버클리대에서 한국문학과 시를 강의. 제1회, 12회 한국문학작가상, 만해 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대산문학상, 만해대상, 문화관광부 문화의 날 은관문화훈장, 제3회 시카다상, 비외른손훈장, 그리핀 시인상 평생공로상, 제5회 영랑시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문학부문상, 아메리카 어워드, 제53회 스트루가 국제시축제 황금화관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