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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동문 시인 / 가(家)와 좀벌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9.

최동문 시인 / 가(家)와 좀벌레

 

 

  책장 틈에 좀벌레가 기어간데이.

  벌레 고놈아, 하얗고 윤이 올랐데이.

 

  가가 엄지로 벌레를 누럴라 카머,

  벌레는 가 속도 보다 빨리 달아났데이.

 

  가가 벌레를 잡을라 카는 거는

  가 가슴에 벌레가 살기 때문인 기라.

 

  벌레한테 마음이 있다고 믿는 거지.

  가도 벌레가 파먹은 마음이 있능 기라.

 

  가는 벌레만 보면 손톱이 이빨이 되는 기라.

  가 맘속에 꿈틀대는 육식동물이 튀어 나오는 기라.

 

  가는 그 육식동물을 잡아가지고

  벌레 앞에서 제(祭)를 올리고 싶은 기라.

 

  가는 억수로 민첩한 짐승을 품었데이.

  그게 가가 심은 주춧돌이 밤마다 흔들리는 이유인기라.

 

  가는 벌레를 따라 무릎으로 기는 기라.

  그 순간에 뿌리를 가진 나무가 되는 기라.

 

월간 『현대시』 2006년 12월호 발표

 

 


 

 

최동문 시인 / 숲과 시인

 

 

  그는 살아가면서 자주 점점 낱말에 걸려 넘어졌다.

  그를 외면하고 떠난 진실한 재주꾼들 뒤에서 넘어졌다.

  그는 넘어지는 순간이 모인 삶이 전부라고 믿었다.

  넘어지는 순간에 넘어지지 않는 무한의 시간을 꿈꾸며

  그는 만유인력이 지배하는 숲으로 들어섰다.

  그가 눈을 뜨고 일어나 걸음을 옮길 때

  나뭇잎이 어깨 위로 떨어졌다.

  그는 숲 속에서 정맥이 돋아난 주름 손으로 거목을 만졌다.

  나무는 흘러내리는 송진 속에서 나이테를 감추고 침묵했다.

  해마다 나이테가 늘어나고

  솔방울 사이로 품은 둥지는 폭풍우에 흩어졌다.

  폭풍이 지나간 숲은 공포를 걷어내고

  엔진 톱에 하나씩 넘어졌다.

  숲은 종이로 다시 태어났고

  나이테만 남은 밑둥치는 어린이 놀이터로 남았다.

  그는 숲에서 놀았다, 잤다, 불을 피웠다, 먹었다, 시를 썼다.

  시는 차곡차곡 통나무 집안에 쌓였다.

  그는 사전에서 글자를 깨물며 도약했다.

  숲이 내뿜는 향기를 관통한 혀가

  시계를 멈추는 노래를 불렀다.

  멈추지 않았다.

  그는 미래에서 와서 과거로 지나가는

  숲 속에 선 뿔을 잃은 유일한 동물이었다.

  그는 네 발과 꼬리를 얻고 나서 숲을 예언할 수 있었지만

  상상력을 깊은 숲의 수맥에 맡기고 망각의 강에 띄웠다.

  상상은 오래 전 금박 책 표지에서 반짝거린 적이 있다.

  그는 영감을 숲의 유일한 우물에서 길어온 맑은 물과 섞었다.

  가속이 붙은 편리한 기계들이

  상상력을 규합하여 시장을 만든 시대에

  저물어 가는 밤 앞에서 그는

  여명의 숲에서 발자국 씨앗을 뿌리며 떠돌았다.

  숲은 해풍으로 모래 언덕을 경계 짓는 방풍림을 허물었다.

  그는 그 순간에 숲이 만든 씨앗을 먹는 한 마리 짐승으로

  숲의 세력 속에서 숲이 만든 경계선을 지우고 나무 위에서 내려왔 다.

  그가 거친 나무를 탈 수 있는

  손발을 가진 것을 흙은 거부하지 않았다.

  손바닥에 박혀있는 굳은살에서 시인의 피가 흘러내릴 즈음에

  숲을 감싸고 있는 푸른 운명이 그와 함께 시를 쓰기 시작했다.

 

2013년 제9회 자연사랑 생명사랑 시 공모전 은상 작품

 

 


 

최동문 시인

경북 경주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수료. 199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즐거운 거지』, 『아름다운 사람』, 『유리동물원』이 있음. 현재 한국문인협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인협회.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