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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용 시인 / 빈센트를 위한 만찬
지네를 자른다.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린다. 지하실의 복도는 마디가 있다. 후미진 달이 갇힌 창문이 내 안으로 길쭉하게, 깨진 유리창 속의 기억이 소름 끼친다. 지네를 자르듯 잘라 버려야지 긴 손가락으로 질끈질끈 자르듯 묶으니 살아 있는 피가 뚝뚝 떨어지며 목도리에 묻힌다. 죽어가지 않을 것 같다. 뒤돌아본 내 지하실 복도 지네는 마디로 산다. 나는 죽지 않는 마디가 무섭고 열 개의 손가락이 무섭고 그보다 더 어울려 그려져 잊힌 목도리가 무섭다. 나의 닫힌 유리창을 열어보곤 언제나 목을 조른다. 목이 긴 해바라기를 바라보다 쏟아진 핏자국의 양귀비 아이리스에 젖어, 데이지 꽃잎으로 몰아쉬던 언덕마다 노을이 채색된다. 수도원의 첨탑 위로 달 조각이 걸리면 까마귀 나는 밀밭풍은 또다시 이글거리는가. 젖은 불빛 아래 카페에서 압생트*로 칵테일한 눈동자의 자화상을 그린다. 내 노오란 집이 떠가는 강물은 마디가 없다.
* 고흐가 그린 에메랄드 빛깔의 술, 가난한 예술가들이 즐겨 마셨다 한다.
시집 『빈센트를 위한 만찬』(한국문연, 2014) 중에서
한경용 시인 / 달랑
장모님은 눈이 크시다. 금방 울어 버리신다. 그 눈에 아이샤도우를, 곱게 옷을 입고 악어 핸드백 들고 당당하게 개업한 사위의 여행사에 나들이 오신다. 봉봉 쌕쌕 두 박스를 들고, 장인 어르신과 같이 후배와 같이 쓰는 신설동 골목의 보증금도 없는 사무실, 달랑 책상 두 개 전화 두 대, 장인은 중국 여행에 대해서만 열심히 물어보신다. 여기저기 사무실을 보다가 전화통을 보다가, 장모님의 큰 눈동자에 눈물이 고인다. 얼른 감춘다. 달랑 맨 몸뚱어리로 결혼한 사위의 자존심을 위하여 얼른 웃어야 한다. 눈물이 보이지 않기 위하여 큰 눈을 껌뻑껌뻑 거르신다. 그래, 눈물은 안으로 들여 넣어야지 눈물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여 넣는 것, 골프투어 상담을 마치고 “전화는 그래도 좀 옵니다.”라고 말하니 장모님은 젖은 눈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공중으로 얼굴을 돌리신다. 네 살배기 아들과 갓 돌이 지난 딸을 둔 저 불안한 외줄을 탄 사위 놈, 기죽일라. 벽에는 달랑 거울 하나, 폼페이유적 사진의 관광 캘린더가 뜨거운 나의 여름을 태우며 위태위태 걸려 있었다. 그 캘린더 를 구경하는 척, 거울을 보는 척, 눈 화장을 고치는 척, “사무실이 참 아담하네. 하고 너스레 떠신다.
검은 눈물은 하늘에도 있다. 베수비어스 산정에서의 화산 폭발로 석고가 된 엎드려 절규하는 임산부, 몇 백 년째 쪼그려 기도만 하는 남자 폼페이는 그날 이후 잿더미에 갇혀 검은 비만 내렸다.
여행사 책상 위에 있는 계간 문예지를 보시더니
아이라인이 뭉개진 눈 속으로 검은 눈이 반짝인다. “내 딸 세끼 밥만 먹여주고 시를 쓰든 말든 해주어.”내게로 흐르기 전에 커피에 타서 그렁그렁 마신다.
시집 『빈센트를 위한 만찬』(한국문연, 201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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