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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미 시인 / 동박새의 우편함
바다가 보이는 언덕길 금련암 우편함은 새집 모양이다 새집 모양으로 동백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지나는 등산객마다 한번쯤 열어 보았는지 손때가 까맣게 묻어 있는 우편함 새들도 들어와서 쉬었다 가는지 새똥까지 하얗게 배달되어 있다 머귀나무 잎 뒹구는 텅 빈 구석엔 비오는 어느 밤 집 없는새들이 비를 피했는지 젖은 깃털 몇 날이 으슬으슬 바람에 떨고 있다 우편함이 새둥지가 될 수도 있다니 골똘히 들여다보면 알 껍질을 쪼아대던 부리 끝처럼 뾰족한 햇살도 보인다 이따금 곰솔 숲에 씻긴 파도 소리도 말갛게 들려오는 금련암 우편함 본디는 새집이었을까 새집이 우편함이 되었을까 스님은무슨 정(情)이 그리 많이 새둥지를 우편함으로 갖고 사는지 아무려나 온 하루 아무도 오지 않는 숲 속 동백꽃잎이 붉은 소인처럼 찍혀 있다
시집 『검은 옥수수밭의 동화』(애지, 2014) 중에서
송유미 시인 / 희망 유리 상회
허름한 희망 유리 상회 창문은 수족관처럼 뭉클뭉클 몰려다니는 양떼구름을 키우고 모래 바람도 키운다. 어느 창틀에든 맞게 잘라 놓은 여러 개의 유리들은 골목길 모롱이에서 튀어나온 똑같은 크기의 승용차와 사람들을 무수히 복제해서 쏟아 내기도 한다. 때론 흐릿하거나 밝거나 어두운 희망 유리 상회 창문 안을 기웃대면 심해에 사는 거북이처럼 등이 굽은 주인을 만날 수 있다. 한 장 한 장 저마다 다른 바다를 품은 듯 바람에 잔물결 치는 희망 유리 상회, 문이 열린 날보다 문이 굳게 닫힌 날이 많은 희망 유리 상회 어쩌다 밤늦게 그 앞을 지나노라면 밤바다보다 고요한 침묵에 나는 지느러미 돋는 한 마리 물고기가 된다
시집 『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푸른사상, 201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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