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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선 시인 / 風俗圖(풍속도)
I. 연
가난이 마냥 곱게 물이 드는 정월이면 연연한 창공으로 축문祝文 하날 띄우나니 군청색 연봉連峯 사이로 부침浮沈하는 고향하늘
얼레에 감긴 시름 빙빙 도는 한 생애를 늦췄다 당기면서 잉아 실에 귀를 모으면 촉촉이 젖어만 오는 저 시원始原의 숨소리
Ⅱ. 널
열아홉 꽃 각시로 불이 붙는 뜨락에서 가슴을 헐어내면 고향문도 열리리니 빈방에 물빛 벽지를 자로 재듯 바르리라
한 소절 음악으로 조요로히 흐르는 강 자벌레 눈금을 헤듯 건너야 할 물이라면 절망을 배우기 위해 솟음직도 하더라
Ⅲ. 그네
찻잔을 비우듯이 想도 念도 비운 날에 내 아픈 손을 적실 두 줄을 잡고 보면 얼비친 치맛자락에 물이 드는 동양화
겸허한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르며 오르고 내려오는 팽팽한 길목에서 힘주어 굴러를 봐도 돌아오는 제자리여!
Ⅳ. 팽이
채우고 채워 봐도 허전한 삶의 둘레 간절한 그리움이 허리까지 밀려오면 윙윙윙 소리 지르며 몸을 틀고 있었다.
채찍에 감길수록 일어서는 매운 절개 불면의 창 너머로 푸른 물이 뚝뚝 지면 춘향이 옥문을 나듯 고샅길을 돌았다.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최도선 시인 / 감정(感情) 박물관
그곳엔 천 년 전 사금파리가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파란물빛 꽃그림이 조금 남아있는 사금파리를 보다가 문득 이름 모를 도공을 생각했다
흙을 치댈 때의 격한 마음과 새벽녘 물 퍼 올릴 때의 정갈한 정신을, 그리고 그가 진흙 위에 그려 넣은 저 꽃은 무슨 꽃이었을까를 생각할 때
- 이름 없는 꽃이라고 그가 침묵의 언어로 답을 해왔다 - 잠시후 - 꽃이 피고 새소리 들리던 삶이었다고 했다 - 나는 그것이 사랑이었냐고 물었다
깨진 조각에 오롯이 남은 저 파란물색은 누구를 품었다 쏟아낸 증표였을까
수없이 패대기치고 동댕이쳐 내다버린 살들이 비바람 속에서 천년을 살아 온 사금파리들이
찬란히 조명을 받고 있다 이제야,
시집 『서른아홉 나연 씨』(지혜, 201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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