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찬호 시인 / 초원의 빛
그때가 유월이었던가요 당신이 나를 슬쩍 밀었던가요 그래서 풀밭에 덜렁 누웠던 것인데 초록이 나를 때렸죠 등짝에 찰싹, 초록 풀물이 들었죠
나는 왠지 모를 눈물이 핑 돌아 벌떡 일어나, 그 너른 풀밭을 마구 달렸죠 초록 신발이 벗겨지는 것도 몰랐죠 숨은 가쁘고 바람에 머리는 헝클어졌죠 나는 그때, 거의, 사랑에 붙잡힐 뻔했죠
언덕에서 느릅나무는 이 모든 걸 보고 있었죠 한낮의 열기 속에서 초록은 꽁지 짧은 새들을 때렸죠 키 작은 제비꽃들도 때렸죠 더 짙고 아득한 곳으로 질주하는 한줄기 어떤 청춘의 빛이 있었죠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2009 중에서
송찬호 시인 / 겨울
이것은 겨울과의 계약서예요 죽은 정원을 하나 샀죠 그러고는 서둘러 실내로 뛰어들어 왔어요
겨울은 자라지 않는 이야기의 계절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가끔씩 지금이 겨울임을 망각하고 이렇게 묻곤 하지요 우리집 풍자諷刺는 왜 키가 크지 않는 거죠?
겨울은 언제나 참으로 길지요 웃고 노래하고 떠들다 지쳤는지 아이들은 이제 눈트는 씨앗의 입구에 몰려가 있어요
창 밖 정원은 여전히 잠들어 있어요 나는 잠시 망치질을 멈추고 깊은 상념에 잠기지요 꽃피고 새 우는 상자 이것의 손잡이를 어느 쪽에 붙일까 생각해야겠기에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2009) 중에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박용진 시인 / 바림 (0) | 2019.06.30 |
|---|---|
| 김은자 시인 / 벼랑의 별 외 1편 (0) | 2019.06.29 |
| 최도선 시인 / 風俗圖(풍속도) 외 1편 (0) | 2019.06.29 |
| 황명자 시인 / 산다는 것 외 1편 (0) | 2019.06.29 |
| 송유미 시인 / 동박새의 우편함 외 1편 (0) | 2019.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