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인 / 꽃빛
손바닥 펴 꽃빛아래 놓으니 꽃빛 그늘 앉아 아롱집니다.
몇일전 秘苑에서 본 그 꽃빛생각 절로 납니다.
그 밝음과 그늘이 열열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 손바닥 위에서......
- 제1부. 좋다 좋다 다좋다! 중(中)
천상병 시인 / 꽃의 位置에 대하여
꽃이 하등 이런 꼬락서니로 필 게 뭐람 아름답기 짝이 없고 상냥하고 소리없고 영 터무니없이 超大人的이기도 하구나.
賢明한 인간도 웬만큼 해서는 당하지 못하리니... 어떤 絶色皇后께서도 되려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이런 이름 짓기가 더러 있었지 않는가 싶다.
미스터 유니버시티일지라도 우락부락해도... 과연 이 꽃송이를 함부로 꺾을 수가 있을까... 한다는 수작이 그 讚頌歌가 아니었을까...
천상병 시인 / 나무
나무를 볼 때마다 나는 하느님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왜냐구요? 글쎄 들어보이소. 산나무에 비료를 준다는 일은 없다. 그래도 무럭무럭 자란다. 이건 왠일인가? 사실은 물밖에 끌어들이는 것이 없지 않는가? 그런데 저렇게 자라다니 신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산이란 산마다 나무가 빽빽히 자라는 것은
천상병 시인 / 나무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 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천상병 시인 / 나의 가난은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 씽 바람 불어라...
천상병 시인 / 나의 갸날픈 신세. 타령조(打令調)
신세(身勢)는 무뢰한(無賴漢)이야. 한이 있어야 할 텐데, 죽어도 싫으니,한제국(韓帝國)은 망했다. 삼국지를 읽으면 유방(劉邦)이는 소인(小人)이란 말이야. 현덕(玄德)은 무능아(無能兒)고, 위대한 분은 공명(孔明)일따름이야. 타령이 나올 따름이야. 막한(幕漢)은 돈도 없고, 슬프고 애달프고 형편(形便)없다. 새는 사는데, 나는 엉망이야.
천상병 시인 / 날개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느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뿐이었는데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성취다. 하느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천상병 시인 / 날고 기는 불상(佛像)
불상은 날고 길 뿐만 아니고, 기어가기도 서슴치 않고 하시니, 날벼락이다. 공룡 못된 강철이라고 하시니, 그러한 걸까? 도대체 무슨 못 이룬 숙원이나 있느냐? 가만히 종용(從容)스레 계시면, 될 것으로 믿느니. 날고 기는 것은 불상이 있다는 것을. 동물류도 물증(物證)하고, 사원승려(寺院僧侶)도 밝히고 믿고, 무생물도 소리를 지르고, 석기류(石器類)도 침묵리(沈默裡)에 신앙(信仰)하다. 바라옵건대, 본인을 극락으로 인도하소서...... .
천상병 시인 / 내가 좋아하는 여자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으뜸은 물론이지만 아내이외일 수는 없습니다.
오십둘이나 된 아내와 육십살 먹은 남편이니 거의 무능력자(無能力者)이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이 시 쓰는 시간은 89년 5월 4일 오후 다섯시 무렵이지만요 -.
2, 3일 전날 밤에는 뭉클 뭉클 어떻게 요동을 치는지
옆방의 아내를 고함 지르며 불렀으나, 한참 불러도 아내는 쿨쿨 잠자는 모양으로
장모님의 "시끄럽다 -, 잠좀 자자"라는 말씀 때문에
금시 또 미꾸라지가 되는 걸 필자(筆者)는 어쩌지 못했어요 -.
- 제3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중(中)
천상병 시인 / 내 집
누가 나에게 집을 사주지 않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목터지게 외친다. 들려다오 세계가 끝날 때까지..... 나는 결혼식을 몇 주 전에 마쳤으니 어찌 이렇게 부르짖지 못하겠는가? 천상의 하느님은 미소로 들을 게다. 불란서의 아르튀르 랭보 시인은 영국의 런던에서 짤막한 신문광고를 냈다. 누가 나를 남쪽 나라로 데려가지 않겠는가. 어떤 선장이 이것을 보고, 쾌히 상선에 실어 남쪽 나라로 실어주었다. 그러니 거인처럼 부르짖는다. 집은 보물이다. 전세계가 허물어져도 내 집은 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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