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린 시인 / 무거운 지축을
낯설은 빛깔들의 회화가 선회하는 거리와 거리에서 5월은 발자욱도 없이 시끄러운 공간을 향하여 기울어져 갔다
오랜 시간의 꿈을 이마에 얹고 펼쳐지는 역사앞에 두 쪽으로 갈려진 나의 육체를 두드려 보아도 오 대답없는 음향아래 쏟아지는 아침은 멀다
청년들이여 이지러진 희망을 안고 또다시 머언 미래의 그림자를 밟으며 가냘픈 나의 체중을 위하여 무거운 지축을 울리자
김경린 시인 / 바람 속으로
새하얀 광선으로 부드러운 나의 육체를 찢어버리는 날 어깨 위에서 반짝이는 구름은 먼 기억 속에 두고 온 과오에 불과한가
소녀들이여 까닭없이 웃지를 말라 능금처럼 거꾸로 떨어지는 바람속으로 빛나는 태양이 보이지 않느냐
벌써 이십세기의 귀부인들은 바다로 가버린 지 오래다 부질없이 채찍질만 하는 공간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며 불며 아득한 내일을 향하여 나는 푸르게 갈앉아 버리자
김경린 시인 / 봄이 오는 소리를 그 누가
지구의 틈바귀에서 솟아오르는 물 줄기처럼 그늘 아래 눈 속 깊이 가로누웠던 봄이 일어서는 소리와 더불어 뇌막 속에 새겨놓고 간 겨울의 이야기들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매스게임이 거품이는 교정 너머로 포플라 가지 위에 올라앉은 전신주의 나래들 그 위에 동상을 푸는 태양과 전자실처럼 늘어놓은 전선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은 ―아마도 4월이 보내는 메시지겠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숨소리겠지 이제 폭죽처럼 봄이 터지는 소리와 더불어 지구의 틈바귀에서 솟아 오르는 흙 내음새처럼 꽃 잎사귀의 향기를 뿌리며 당신이 돌아오는 발굽 소리를 그 누가 알겠습니까
김경린 시인 / 불안한 서적속에서
호화로운 유니폼을 입은 밤이 나의 체중에 균형을 잃게 할 때 군가에 물들은 시가지는 마드리컬한 기류에 젖어 가고
아무런 댓가도 나에게 지불할 수 없는 고독이 이마에 부서진다 해도
무축건축(無蓄建築)과 그리고 산아제한이 몹시도 매력을 가져오는 오늘이었기에
차라리 생산과잉으로 나를 괴롭히던 그러한 시대가 그리웠다
오늘도 무수한 훈장들의 행렬이 그 무슨 시대의 표지처럼 화려한데
육체의 비중을 잃은 나와 나의 육친들은 불안한 서적속에서 오늘의 고향을 찾으려 한 것이 어리석었다
오히려 기류처럼 흐르는 밤이면 밤이 뿌리고 간 신화속에 이러한 권태로운 사실들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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