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근대)

김경린 시인 / 무거운 지축을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27.

김경린 시인 / 무거운 지축을

 

 

낯설은

빛깔들의 회화가 선회하는

거리와

거리에서

5월은 발자욱도 없이

시끄러운

공간을 향하여 기울어져 갔다

 

오랜

시간의 꿈을 이마에 얹고

펼쳐지는 역사앞에

두 쪽으로 갈려진

나의 육체를 두드려 보아도

대답없는 음향아래

쏟아지는 아침은 멀다

 

청년들이여

이지러진 희망을 안고

또다시

머언 미래의 그림자를

밟으며

가냘픈

나의 체중을 위하여

무거운 지축을 울리자

 

 


 

 

김경린 시인 / 바람 속으로

 

 

새하얀 광선으로

부드러운

나의 육체를 찢어버리는 날

어깨 위에서

반짝이는 구름은

먼 기억 속에

두고 온 과오에 불과한가

 

소녀들이여

까닭없이 웃지를 말라

능금처럼

거꾸로 떨어지는

바람속으로

빛나는 태양이 보이지 않느냐

 

벌써

이십세기의 귀부인들은

바다로 가버린 지 오래다

부질없이

채찍질만 하는 공간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며 불며

아득한 내일을 향하여

나는 푸르게 갈앉아 버리자

 

 


 

 

김경린 시인 / 봄이 오는 소리를 그 누가

 

 

지구의 틈바귀에서

솟아오르는 물 줄기처럼

그늘 아래

눈 속 깊이 가로누웠던

봄이 일어서는 소리와 더불어

뇌막 속에

새겨놓고 간 겨울의 이야기들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매스게임이

거품이는 교정 너머로

포플라 가지 위에

올라앉은 전신주의 나래들

그 위에

동상을 푸는 태양과

전자실처럼 늘어놓은

전선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은

―아마도 4월이 보내는 메시지겠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숨소리겠지

이제

폭죽처럼 봄이 터지는 소리와 더불어

지구의 틈바귀에서

솟아 오르는 흙 내음새처럼

꽃 잎사귀의 향기를 뿌리며

당신이 돌아오는 발굽 소리를

그 누가 알겠습니까

 

 


 

 

김경린 시인 / 불안한 서적속에서

 

 

호화로운

유니폼을 입은 밤이

나의 체중에

균형을 잃게 할 때

군가에 물들은 시가지는

마드리컬한 기류에 젖어 가고

 

아무런

댓가도 나에게 지불할 수 없는

고독이

이마에 부서진다 해도

 

무축건축(無蓄建築)과

그리고

산아제한이 몹시도

매력을 가져오는 오늘이었기에

 

차라리

생산과잉으로 나를 괴롭히던

그러한 시대가 그리웠다

 

오늘도

무수한 훈장들의 행렬이

그 무슨 시대의 표지처럼

화려한데

 

육체의

비중을 잃은

나와 나의 육친들은

불안한 서적속에서

오늘의 고향을

찾으려 한 것이 어리석었다

 

오히려

기류처럼 흐르는 밤이면

밤이 뿌리고 간 신화속에

이러한

권태로운 사실들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김경린(金璟麟.1918.4.24∼2006)

시인ㆍ실업가. 함경북도 경성(鏡城) 출생. 1942년 일본 와세다 대학 토목공학과 졸업. 1967년 한양대 토목공학과 졸업, 1970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석사과정 수료. 1939년 조선일보에 <차창> <꽁초> <화안(畵眼)>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 1940년 일본의 시잡지 [Vou]의 동인으로 시를 쓰기 시작, 모더니즘 운동에 참여, 해방 후에 귀국, 1950년 [후반기] [신시론(新詩論)] 동인으로 모더니즘운동에 앞을 서면서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썼다.

 한국시인협회 사업부 간사, 서울시 수도과장, 건설부 국토보전국 도시과장, 경설공무원교육원장 및 영남국토건설국장, 수자원개발공사 이사, 자유문학자협회 중앙위원, 한국신시학회 회장 역임. 세기종합기술공사 대표이사를 거쳐 현재 동 명예회장. 8ㆍ15 후에는 주로 토목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후반기 동인들과 함께 시집을 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제5회 문학상(1986), 1988년 제3회 상화시인상(1988), 녹조근정훈장, 대통령표창, 예술평론가협회 최우수예술가상(1994)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