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 시인 / 봄철의 바다
저기 고요히 멈춘 기선의 굴뚝에서 가늘은 연기가 흐른다.
엷은 구름과 낮겨운 햇빛은 자장가처럼 정다웁구나
실바람 물살지우는 바다로 낮윽하게 VOㅡㅡ우는 기적의 소리가 들린다.
바다를 향해 기울어진 풀두던에서 어느덧 나는 휘파람 불기에도 피로하였다.
이장희 시인 / 하일소경(夏日小景)
운모같이 빛나는 서늘한 테이블 부드러운 얼음 설탕 우유 피보다 무르녹은 딸기를 담은 유리잔 얇은 옷을 입은 저윽히 고달픈 새악씨는
기름한 속눈썹을 깔아 맞히며 가냘픈 손에 들은 은사시로 유리잔의 살찐 딸기를 부스노라면 담홍색의 청량제가 꽃물같이 흔들린다.
은사시에 옮기인 꽃물은 새악씨의 고요한 입술을 앵도보다 곱게도 물들인다. 새악씨는 달콤한 꿀을 마시는 듯 그 얼굴은 푸른 잎사귀같이 빛나고
콧마루의 수은 같은 땀은 벌써 사라졌다. 그것은 밝은 하늘을 비친 작은 못 가운데서 거울같이 피어난 연꽃의 이슬을 헤엄치는 백조가 삼키는 듯하다.
이장희 시인 / 고양이의 꿈
시내 위에 돌다리 다리 아래 버드나무 봄 안개 내리인 시냇가에 푸른 고양이 곱다랗게 단장하고 빗겨 있오 울고 있오. 기름진 꼬리를 쳐들고 밝은 애달픈 노래를 부르지요. 푸른 고양이는 물오른 버드나무에 스르르 올라가 버들가지를 안고 버들가지를 흔들며 또 목 놓아 웁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멀리서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고 칼날이 은같이 번쩍이더니 푸른 고양이도 볼 수 없고 꽃다운 소리도 들을 수 없고 그저 쓸쓸한 모래 위에 선혈이 흘러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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