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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신동엽 시인 / 새해 새 아침은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4.

신동엽 시인 / 새해 새 아침은

 

 

  새해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 않았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하침은

  우리들의 대화

  우리의 눈빛 속에서

  열렸다.

 

  보라

  발 밑에 널려진 골짜기

  저 높은 억만개의 산봉우리마다

  빛나는

  눈부신 태양

  새해엔

  한반도 허리에서

  철조망 지뢰들도

  씻겨갔으면,

 

  새해엔

  아내랑 꼬마아이들 손 이끌고

  나도 그 깊은 우주의 바다에 빠져

  달나라나 한 바퀴

  돌아와 봤으면,

 

  허나

  새해 새 아침은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오지 않는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안창

  영원으로 가는 수도자의 눈빛 속에서

  구슬짓는다.

 

 


 

 

신동엽 시인 / 序詩(서시)

 

 

  아담한 산들 드믓 드믓

  맥을 끊지 않고 오간

  서해안 들녘에 봄이 온다는 것

  것은 생각만 해도, 그대로

  가슴 울렁여 오는 일이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또 가을

  가을이 가면 겨울을 맞아 오고

  겨울이 풀리면 다시 또

  봄.

 

  농삿군의 아들로 태어나

  말썽 없는 꾀벽동이로

  고웁게 자라서

  씨 뿌릴 때 씨 뿌리고

  걷워딀 때 걷워딀 듯

  어여쁜 아가씨와 짤랑 짤랑

  꽃가마 타 보고

  환갑 잔치엔 아들딸 큰절이나

  받으면서 한 평생 살다가

  조용히 묻혀가도록 내 버려나

  주었던들

 

  또, 가욋말일찌나, 그러한 세월

  복 많은 歌人(가인)이 있어

  (蜂蝶風月(봉접풍월)을 노래하고

  장미에 찔린 애타는 연심을 읊조리며

  수사학이 어떠니 표현주의가 어떠니

  한단들 나 역 모르는 분수대로

  그 장단에 맞추어 어깨춤이라도

  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원자탄에 맞은 사람

  태백줄기 고을 고을마다

  강남 제비 돌아와 흙 묻어 나르면

  솟아오는 슬픔이란 묘지에 가 있는

  누나의 생각일까.....?

 

  산이랑 들이랑 강이랑

  이뤄 그 푸담한 젖을 키우는

  울렁이는 내 산천인데

  머지 않아 나는 아주

  죽히우러 가야만 할 사람이라는

  것이라.

 

  잘 있으라.

  해가 뜨나 해가 지나 구름이 끼던

  두번 다시 상기하기 싫은

  人種(인종)의 늦장마철이여

 

  이러한 노래 나로 하여

  처음이며 마즈막이게 하라

  진창을 노래하여 그 진창과 함께

  멸망해 버려야 할 사람이

  앞과 뒤를 헤쳐 세상에

  꼭 하나뿐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면.....

  두고 두고, 착한 인간의 후손들이여

 

  이 자리에 가는 길

  서낭당 돌을 던져

 

  구데기.

  그런 역사와 함께 멸망한 나의

  무덤, 침 한번 더 뱉고

  다시 보지 말아져라.

 

 


 

 

신동엽 시인 / 수운이 말하기를

 

 

  水雲(수운)이 말하기를

  슬기로운 가슴은 노래하리라.

  맨발로 삼천리 누비며

  감꽃 피는 마을

  원추리 피는 산 길

  맨주먹 맨발로

  밀알을 심으리라.

 

  수운이 말하기를

  하눌님은 콩밭과 가난

  땀흘리는 사색 속에 자라리라.

  바다에서 조개 따는 소녀

  비 개인 오후 미도파 앞 지나는

  쓰레기 줍는 소년

  아프리카 매 맞으며

  노동하는 검둥이 아이,

  오늘의 논밭 속에 심궈진

  그대들의 눈동자여, 높고 높은

  하눌님이어라.

 

  수운이 말하기를

  강아지를 하눌님으로 섬기는 자는

  개에 의해

  은행을 하눌님으로 섬기는 자는

  은행에 의해

  미움을 하눌님으로 섬기는 자는

  미움에 의해 멸망하리니,

  총 쥔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그, 사랑에 의해 구원받으리라.

 

  수운이 말하기를

  한반도에 와 있는 쇠붙이는

  한반도의 쇠붙이가 아니어라

  한반도에 와 있는 미움은

  한반도의미움이 아니어라

  한반도에 와 있는 가시줄은

  한반도의 가시줄이 아니어라.

 

  수운이 말하기를,

  한반도에서는

  세계의 밀알이 썩었느니라.

 

동아일보(東亞日報), 1968년 6월 27일


 


 

 

신동엽 시인 / 어느 해의 유언

 

 

  뭐…….

  그리 대단한 거

  못되더군요

 

  꽃이 핀 길가에

  잠시 머물러 서서

 

  맑은 바람을

  마셨어요

 

  모여 온 모습들이 곱다 해도

  뭐 그리 대단한 거

  아니더군요

 

  없어져

  도리하며

  살아보겠어요

 

  맑은 바람은 얼마나 편안할까요.

 

 


 

 

신동엽 시인 / 여름 이야기

 

 

  팔월의 하늘에는

  구름도 없고

  바람 부는 가로수,

  피난가는 내 소녀는

  영어를 알고

  있었지.

 

  나뭇게 끄을며

  절길 오른

  바랑,

  산골길 칠백리엔

  이마 훔치던

  원효선사.

 

  원두막 밑에선 미국 간 아들

  편질 읽으며 칠순 할아버지가

  사관침 장죽에 쑥을 버무려 넣고

  있었지.

 

  패랭이 달린

  황토 언덕

  젯트편대가

  강을 울리면

  배꼽 내논 아해들은

  풀뿌리 씹으며

  구경을 하고.

 

  마(馬), 진(辰) 사람네

  조개무덤 쌓던

  댕댕이 넌출 고을엔

  수평 멀리

  함성소리만

  불 질려 오른다.

 

  꽃신 놓인 토방

  놋거울은 닳고,

  콩밭 매는 뒷곁

  황진이 숲속선

  땅 즐겁게

  멍석 딸기가

  익고

  있었다.

 

창작과비평, 1968. 여름

 


 

 

신동엽 시인(1930년-1969년)

신동엽(申東曄,)은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서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3년 부여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국가에서 숙식과 학비를 지원해 주는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1949년 부여 주변에 있는 국민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으나 3일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가 그해 9월 말까지 부여 민족청년회 선전부장으로 일하다 국민방위군에 징집됐다.

1953년 단국대를 졸업한 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자취방을 얻어 친구의 도움으로 돈암동 네 거리에 헌책방을 열었다. 신동엽은 이때 이화여고 3학년이던 부인 인병선을 만났다. 1957년 인병선과 결혼한 뒤 고향으로 낙향하여 충남 보령군 주산농업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58년 각혈을 동반한 폐결핵을 앓게 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 돈암동 처가에 아내와 자녀를 올려 보낸 뒤 고향 부여에서 요양하며 독서와 글쓰기에 빠진다. 1959년 독서와 문학 습작에 몰두하다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를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