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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신동엽 시인 / 사랑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3.

신동엽 시인 / 사랑

 

 

  진하게

  진하게

  모란처럼 소북함 가득 담고 오너라

  

  참새처럼 깡똥한, 날매

  가슴차게 안겨 오너라

  

  경(憬)이여

  

  장미처럼 매선 향기

  가시로 쏘아라

  

  화염(華艶)한 눈웃음은

  다음 장(章)으로

 

 


 

 

신동엽 시인 / 사랑의 고정

 

 

  사랑의 고정(苦情)을 이해하기가

  그리 쉽답니까?

  말슴 마쇼.

  지금 곧 죽어가는 사람도

  겉으로 웃으면 건강한 사람으로

  이해되는 거랍니다.

 

  천지신명이 대자연에 밝으니

  나는 아무델 가나

  알머리처럼 따가워라.

 

  너의 방에선 너의 보금자리 남새가 난다.

 

  자신(自信)이 흔들리는 지라

  자꾸

  역확인(逆確認)을 얻으려고

 

  <자신 있느니라고>

  강조해 보는 것이리라.

 

  석(石)을 두고의 순수한 상모(想慕)가 아니다.

  어느 누구의 것과 비교하기 위한

  빌미로써의 석(石).

  또는 그것에 반동적으로 대립하기 위한

  방패로써의 석(石).

 

 


 

 

신동엽 시인 / 살덩이

 

 

  우리들의 이야기는

  걸레

 

  살아있는 것은

  마음뿐이다.

 

  마음은

  누더기

 

  살아있는 것은

  뼈뿐이다.

 

  오, 비본질적인 것들의

  괴로움이여

 

  뼈는

  겉치레

 

  살아 있는 것은

  바람과

  산뿐이다.

 

  그렇게 많은

  비단을 감았지만

 

  너를 움직이는 건

  흔들리고 있는 것은

  고깃덩어리 알몸

 

  물건 없는 산

  소나무 곁을

  혼자서 너는 걸어가고 있고야

 

  오, 작별한 냄새여

  살덩이가

  지금 저 산을

  내려가고 있고야

 

창작과비평, 1970년 봄호, 1970


 


 

 

신동엽 시인 / 삼월

 

 

오늘은 바람이 부는데

하늘을 넘어가는 바람

더러움 역겨움 건들이고

내게로 불어만 오는데

 

음악실 문 앞

호주머니 뒤지며

멍 멍 서 있으면

 

양주 쓰레기통 속

구두통 멘 채

콜탈칠이 걸어온다

 

배는 고파서 연인(戀人) 없는 봄

문 닫은 사무실 앞

오원짜리 국수로 끼니 채우면

그래도 콧등은 간지러운

코리아

 

제주로 갈거나

사월(四月)이 오기 전

갯벌로 갈거나, 가서

복쟁이 알이나

주워먹어 볼거나

 

바람은 부는데

꽃피던 역사(歷史)의 살은

흘러갔는데

폐촌(廢村)을 남기고 기름을

빨아가는 고층(高層)은 높아만 가는데

 

말없는 내 형제(兄弟)들은

광화문(光化門) 창밑, 고개 숙이고

지나만 가는데

오원짜리 국수로 끼니 채우고

사직공원(公園) 벤취 위

하루 낮을 보내노라면

압록강 철교같은 소리는

들려오는데

 

바다를 넘어

오만은 점점 거칠어만 오는데

그 밑구멍에서 쏟아지는

찌꺼기로 코리아는 더러워만 가는데

 

나만이 아닌데

쭉지 잽히고

아사(餓死)의 깊은 대사관(大使館) 앞

걸어가는 행렬(行列)은

나만이 아닌데

 

이젠

안심하고 디딜 한 평의 땅도

없는데

지붕마다

전략(戰略)은 번식해만 가는데

 

버스 정류장 앞

호주머니 뒤지며

멍 멍 서 있으면

 

늘메미 울음 같은

아사녀의 봄은

말없이 고개 숙이고 지나만 가는데

 

동학(東學)이여, 동학(東學)이여

금강(錦江)의 억울한 흐름 앞에

목 터진, 정신이여

때는 아직도 미처 못다 익었나본데

 

소백(小白)으로 갈거나

사월(四月)이 오기 전

야산(野山)으로 갈거나

그날이 오기 전, 가서

꽃창(槍)이나 깎아보며 살거나

 

현대문학, 1965. 5

 


 

 

신동엽 시인 / 새로 열리는 땅

 

 

  하루 해

  너의 손목 싸쥐면

  고드름은 운하 못 미쳐

  녹아 버리고.

 

  풀밭

  부러진 허리 껴건지다 보면

  밑둥 긴 폭포처럼

  역사는 철 철 흘러가 버린다.

 

  피다순 쭉지 잡고

  너의 눈동자 영넘으면

  정전지구는

  바심하기 좋은 이슬 젖은 안마당.

 

  고동치는 젖가슴 뿌리세우고

  치솟은 삼림 거니노라면

  초연 걷힌 밭 두덕 가

  새벽 열려라.

 

 


 

 

신동엽 시인(1930년-1969년)

신동엽(申東曄,)은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서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3년 부여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국가에서 숙식과 학비를 지원해 주는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1949년 부여 주변에 있는 국민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으나 3일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가 그해 9월 말까지 부여 민족청년회 선전부장으로 일하다 국민방위군에 징집됐다.

1953년 단국대를 졸업한 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자취방을 얻어 친구의 도움으로 돈암동 네 거리에 헌책방을 열었다. 신동엽은 이때 이화여고 3학년이던 부인 인병선을 만났다. 1957년 인병선과 결혼한 뒤 고향으로 낙향하여 충남 보령군 주산농업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58년 각혈을 동반한 폐결핵을 앓게 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 돈암동 처가에 아내와 자녀를 올려 보낸 뒤 고향 부여에서 요양하며 독서와 글쓰기에 빠진다. 1959년 독서와 문학 습작에 몰두하다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를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