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로 시인 / 사랑은
사랑은 겁 없는 가슴으로서 부드러운 님의 가슴에 건너 매여진 일넝―흔들리는 실이니
사람아 목숨 가리지 않거든 그 흔들리는 실 끊어지기 전 저 편 언덕 건너 가자
조선의 마음, 평문관, 1924
변영로 시인 / 생시에 못 뵈올 님을
생시에 못 뵈올 님을 꿈에나 뵐까하여 꿈 가는 푸른 고개 넘기는 넘었으나 꿈조차 흔들리우고 흔들리어 그립던 그대 가까울 듯 멀어라
아, 미끄럽지 않은 곳에 미끄러저 그대와 나 사이엔 만리가 격했어라 다시 못뵈올 그대의 고은 얼굴 사라지는 옛 꿈보다도 희미하여라
조선의 마음, 평문관, 1924
변영로 시인 / 설상소요(雪上逍遙)
곱게 비인 마음으로 눈 위를 걸으면 눈 위를 걸으면 하얀 눈은 눈으로 들어오고 머리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마음 속으로 숨어 들어와서 붉든 사랑도 하얘지게 하고 누르든 걱정도 하얘지게 하고 푸르든 희망도 하얘지게 하며 검든 미움도 하얘지게 한다 어느덧 나도 눈이 되여 하얀 눈이 되여 환괴(幻怪)한 곡선(曲線)을 대공(大空)에 거리우며 나리는 동무측에 휩싸이여 나려간다― 곱고 아름다움으로 근심과 죽음이 생기는 `색채(色彩)'와 `형태(形態)'의 세계(世界)를 덮으러. 아름다웁든 `폼페이'를 나리 덮은 빼쓰쀼쓰 화산(火山)의 재같이!
조선의 마음, 평문관, 1924
변영로 시인 / 오, 나의 영혼의 기(旗)여
펄렁거려라, 오, 펄렁거려라, 나의 영혼의 기(旗)여, 펄렁거려라― 산에서나, 바다에서나! 영원히 조바심하는 나의 기(旗)여!
비맞은 버들이 너의 아름다움이 아니며, 종용(從容)히 달린 기독(基督)의 수난(受難)이 너의 운명(運命)이 아니다,
오, 나의 영혼의 기(旗)여, 기껏, 맘껏 펄렁거려라, 오, 죽지 않는 정열(情熱)의 기(旗)여, 나의 영혼의 기(旗)여!
조선의 마음, 평문관,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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