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로 시인 / 오, 솟는 해
오, 솟는 해, 퍼지는 해, 기우는 해 하눌 길 걷는 너의 거름 빠르고도 느리다.
해야 물어 보자, 너의 거름 재임은 한 복판[中天]에 계옵신 님 만나 뵈렴인가?
해야, 물어보자, 너의 거름 느림은 만나자 이별하기 마음이 무거워서인가?
조선의 마음, 평문관, 1924
변영로 시인 / 이월(二月) 햇발
가녈프게 가녈프게 퍼지는 이월(二月) 햇빛은 어느 딴 세상에서 나리는 그늘 같은데
오는 봄의 머ㄴ 치마자락 끄는 소리는 가려는 `찬손님'의 무거운 신 끄는 소리인가
조선의 마음, 평문관, 1924
변영로 시인 / 추억(追憶)만이
모든 `현실(現實)'은 영원(永遠)히
아이삐[藤]의 그늘로 가리워져라
그리하여 이슬 같은 추억(追憶)만이
그의 슬픈 광영(光榮) 가운데서 혼절(昏絶)케 하여라.
생(生)이란 그윽하고 먼 기억과 기억과의 연쇄(連鎖)인 것뿐. 그리하여 `이론(理論)'과 `사실(事實)'의 횃불이 우리에게 쏘일 제, 우리는 움치러진다― 헷빛에 내치여진 올빼미 모양으로……
그럼으로 환상(幻像)을 더 분명(分明)히 보려고 우리는 눈을 곱게 감는 것이 아니냐? 석모(夕暮)의 찬연(燦然)한 광영(光榮) 가운데서는 우리는 경건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느냐?
아, 모든 `현실(現實)'은 영원(永遠)히! 보라빛 금(金)빛의 얇은 깁으로 가리워저라 그리하여 아렴풋한 추억(追憶)만이 곱게 그윽하게 살게 하여라!
조선의 마음, 평문관, 1924
변영로 시인 / 친애하는 벗이여
친애하는 벗이여! 왜 잔소리를 하는가― 영혼을 가난케 하는 잔소리를? 기어코 잔소리를 하려거든 자갯돌 우를 흐르는 시내물같이 잔소리를 하여라.
친애하는 벗이여! 왜 그다지도 신음하는가― 마음을 어둡게 하는 신음을? 기어코 신음을 하려거든 바람에 휩쓸리는 삼림같이 신음하여라.
친애하는 벗이여! 왜 비웃는 것같이 웃는가― 초생달빛같이 엷은 웃음을? 반드시 한번 웃으려거든 가없는 바다 위에 햇빛같은 넓은 웃음을 웃어라!
조선의 마음, 평문관, 1924
변영로 시인 / 하늘만 보아라
벗이여, 바다를 내다보지 말아라― 발가벗은 어여쁜 색씨님네 `죽음으로 꼬이는 노래' 부른다. 다만 `쁘가슈나'이 젖같이 흐르는 멀고 깊고 푸른 하늘만 보아라.
벗이여, 숲 속을 기웃대지 말아라 간사스런 작은 사람들이 낯선 곳에서 너의 발자취 어지럽게 할라. 다만 `쁘가슈나'이 젖같이 흐르는 멀고 깊고 푸른 하늘만 보아라
조선의 마음, 평문관, 1924
|
'◇ 시인과 시(근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장희 시인 / 봄철의 바다 외 2편 (0) | 2019.09.05 |
---|---|
신동엽 시인 / 여자의 삶 (0) | 2019.09.05 |
신동엽 시인 / 새해 새 아침은 외 4편 (0) | 2019.09.04 |
임화 시인 / 현해탄 외 1편 (0) | 2019.09.04 |
변영로 시인 / 사랑은 외 3편 (0) | 2019.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