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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신동엽 시인 / 강(江)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5.

신동엽 시인 / 강(江)

 

 

나는 나를 죽였다.

비 오는 날 새벽 솜바지 저고리를 입힌 채 나는

나의 학대받는 육신을 강가에로 내몰았다.

솜옷이 궂은비에 배어

가랭이 사이로 물이 흐르도록 육신은

비겁하게 항복을 하지 않았다.

물팡개치는 홍수 속으로 물귀신 같은

몸뚱어리를 몰아쳐 넣었다.

한 발짝 한 발짝 거대한 산맥 같은

휩쓸려 그제사 그대로 물넝울처럼 물결에

쓰러져 버리더라 둥둥 떠내려 가는 시체 물 속에

주먹 같은 빗발이 학살처럼

등허리를 까뭉갠다. 이제 통쾌하게

뉘우침은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너무 얌전하게 나는 나를 죽였다.

가느다란 모가지를 심줄만 남은 두 손으로

꽉 졸라맸더니 개구리처럼 삐걱! 소리를 내며

혀를 물어 내놓더라.

강물은 통쾌하게 사람을 죽였다.

 

창작과비평, 1970. 봄

 

 


 

 

신동엽 시인 / 금강(錦江)

 

 

진달래,

지금도 파면, 백제(百濟) 때 기왓장

나오는 부여(夫餘) 군수리

농삿군의 딸이 살고 있었다.

송화(松花)가루 따러

금성산(錦城山) 올랐다

내려오는 길

바위 사이 피어 있는 진달래

한 송이 꺾어다가

좋아하는 사내 병석 머리맡

생화(生化) 해 줬지.

 

다음 담 날

그녀는 진달래,

화병에서 뽑아, 다시

금성산 기슭

양지쪽에 곱게 묻어줬다.

 

백제(百濟),

천오백년, 별로

오랜 세월이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 할아버지를 생각하듯

몇 번 안가서

백제는

우리 엊그제, 그끄제에

있다.

 

진달래,

부소산 낙화암(落花岩)

이끼 묻은 바위서리 핀

진달래,

 

너의 얼굴에서

사랑을 읽었다.

숨결을 들었다,

손길을 만졌다,

어제 진

백제 때 꽃구름

비단 치맛폭 끄을던

그 봄하늘의

바람소리여.

 

마한(馬韓) 땅,

부리달이라는 사나이가

우는 아들 다섯살배기를 맴매 했다.

귓가에 희미한 먹이 졌다.

 

귓가의 먹을 본 동네 할아버지

아소는, 어린이의 손을 잡고

흙길에 앉아서 울었다.

마을 앞엔 정자나무가 있었고

정자나무 옆엔 두렛마당,

 

동네 할아버지 아소는 부리달을

두렛마당에 불러다 놓았다.

 

흙바닥에 나무개피로 조그만

동그라미 그어놓고 부리달로 하여금

사흘 밤낮을, 동그라미 속에 서 있게

벌줬다.

 

아소도 그 옆 또하나의

조그만 동그라미 그어놓고

사흘 밤낮을 서서, 밤이슬 맞으면서

함께 울었다.

 

신동엽전집, 창작과비평사, 1975

 

 


 

 

신동엽 시인 / 기계(機械)야

 

 

아스란 말일세. 평화한 남의 무덤을 파면 어떡해. 전원으로 가게, 전원 모자라면 저 숱한 산맥 파 내리게나.

 

고요로운 바다 나비도 날으잖는 봄날 노오란 공동묘지에 소시랑 곤두세우고 점령기(占領旗) 디밀어 오면 고요로운 바다 나비도 날으잖는 꽃살 이부자리가 예의가 되겠는가 말일세.

 

아스란 말일세. 잠자는 남의 등허릴 파면 어떡해. 논밭으로 가게 논밭 모자라면 저 숱한 산맥, 태백(太白) 티벳 파밀고원으로 기어 오르게나. 하늘 천만개의 삽으로 퍽퍽 파헤쳐 보란 말일세.

 

아스란 말일세. 흰 젖가슴의 물결치는 거리, 소시랑 씨근대고 다니면, 불쌍한 기계야 경치(景致)가 되겠는가 말일세. 간밤 평화한 나의 조국에 기어들어와 사보뎅 심거놓고 간 자 나의 어깨 위에서 사보뎅 뽑아가란 말일세.

 

정배기에 소나무 꽂으고 행진하는 자 그대는 대지(垈地)인가?

새파란 나이야 풀씨 물고 숫제 초원으로 달아나 버리게.

 

그러기 아스란 말이시네. 경치가 아니시네. 엉덩이에 기념탑 심거지면 기껏, 그거냔 말일세. 무너져 버리게. 어제까지의 땅 삽으로 질러 바닷속 무너 느버리고 숫제 바다로 쏟아져 버리게.

 

고요로운 바다 나비도 날으잖는 봄날 공동묘지에 소시랑 곤두세우고 점령기 디밀어 오면 다시는 그런 버르장머리, 다시는 분즐어놓고 말겠단 말일세.

 

시단(詩壇), 1963

 

 


 

 

신동엽 시인(1930년-1969년)

신동엽(申東曄,)은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서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3년 부여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국가에서 숙식과 학비를 지원해 주는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1949년 부여 주변에 있는 국민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으나 3일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가 그해 9월 말까지 부여 민족청년회 선전부장으로 일하다 국민방위군에 징집됐다.

1953년 단국대를 졸업한 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자취방을 얻어 친구의 도움으로 돈암동 네 거리에 헌책방을 열었다. 신동엽은 이때 이화여고 3학년이던 부인 인병선을 만났다. 1957년 인병선과 결혼한 뒤 고향으로 낙향하여 충남 보령군 주산농업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58년 각혈을 동반한 폐결핵을 앓게 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 돈암동 처가에 아내와 자녀를 올려 보낸 뒤 고향 부여에서 요양하며 독서와 글쓰기에 빠진다. 1959년 독서와 문학 습작에 몰두하다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를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