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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장희 시인 / 청전(靑天)의 유방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6.

이장희 시인 / 청전(靑天)의 유방

 

 

어머니 어머니라고

어린 마음으로 가만히 부르고 싶은

푸른 하늘에

따스한 봄이 흐르고

또 흰 별을 놓으며

불룩한 유방이 달려 있어

이슬 맺힌 포도송이보다 더 아름다와라.

 

탐스러운 유방을 볼지어다.

아아 유방으로서 달콤한 젖이 방울지려하누나

이때야말로 애구(哀求)의 정이 눈물겨웁고

주린 식욕이 입을 벌리도다.

이 무심한 식욕

이 복스러운 유방……

쓸쓸한 심령이여 쏜살같이 날라지어다.

푸른 하늘에 날라지어다.

 

 


 

 

이장희 시인 / 쓸쓸한 시절

 

 

어느덧 가을은 깊어

들이든 뫼이든 숲이든

모두 파리해 있다.

 

언덕 위에 우뚝히 서서

개가 짖는다.

날카롭게 짖는다.

 

비ㄴ 들에

마른 잎 태우는 연기

가늘게가늘게 떠오른다.

 

그대여

우리들 머리 숙이고

고요히 생각할 그때가 왔다.

 

 


 

 

이장희 시인 / 벌레 우는 소리

 

 

밤마다 울던 저 벌레는

오늘도 마루 밑에서 울고 있네.

 

저녁에 빛나는 냇물같이

벌레 우는 소리는 차고도 쓸쓸하여라

 

밤마다 마루 밑에서 우는 벌레소리에

내 마음 한없이 이끌리나니

 

 


 

이장희 시인(李章熙 : 1900~1929)

1900년 1월 1일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집안은 대구의 부호였으며 부친 이병학은 친일파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그의 친어머니였던 박금련은 이장희가 5세때 사망하고 계모 슬하에서 자랐다. 그의 부친은 3번을 결혼하였으며 형제는 10남 8녀였다. 대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중학교 졸업하였다. 《금성(金星)》지의 동인이 되어 동지에 《청천(靑天)의 유방(乳房)》《실바람 지나간 뒤》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였다.

우울하고 비사교적인 성격 때문에 이상화, 양주동, 백기만 등 일부 친분이 있는 문인들만 교우하였고 작품도 많이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안으로 파고드는 깊은 감성(感性)은 섬세한 감각과 심미적인 이미지를 작품에 표출시켜 《봄은 고양이로다》《하일소경(夏日小景)》 등의 주옥같은 시편을 남겼다. 복잡한 가정환경과 친일파인 부친이 조선총독부 관리로 취업을 강요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였고 결국 부친과의 갈등으로 집을 나와 궁핍하고 고독한 생활을 보냈다. 1929년 11월 28세를 일기로 음독자살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앞에 든 것 외에 《석양구(夕陽丘)》《동경(憧憬)》《고양이의 꿈》《봄철의 바다》《눈은 나리네》《연(鳶)》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