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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장희 시인 / 석양구(夕陽丘)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7.

이장희 시인 / 석양구(夕陽丘)

 

 

바람소리는 아니고

실낱같은 소리가 있어

푸른 잎사귀 너머로

나직하게 나직하게 들리도다.

 

멀리서 부르는 꿈 노랜지

야릇한 소리는 끊임없이

고운 향기에 녹아들어

쓸쓸한 이 가슴에 사무치어라.

 

가을에 속삭이는 물결같이

풋어린 설움이 흔드는 대로

나도 몰래 들가의 지름길은

보리 심은 언덕으로 오르나니

 

보아라, 새까만 큰 바위 사이에

높이 받들은 성(聖) 마리아,

새맑은 모래 위에 꿇앉으며

우러르고 구부린 수녀(修女)들을

 

두 팔을 가슴 위에 맞대이고

끝없이 기리는 독경(讀經)의 소리

혹(惑)시 떨리고 혹(惑)시 그윽하여

수녀(修女)들은 성상(聖像)밑에 깃들이도다.

 

오, 신앙(信仰)의 기쁨이여

넘치는 영광(榮光)에 젖은 수녀(修女)들의 소리여

나의 고달픈 령(靈), 거칠은 몸은

무거운 묵시(默示)에 느껴울다.

 

어느덧 늦은 바람은 한숨짓고

빗발같은 사양(斜陽)을 가로받은

교당(敎堂)의 붉은 벽돌, 둥그런 유리창(琉璃窓)은

갸륵한 금(金)빛에 빛나여라.

 

아, 지금 수녀(修女)들의 고운 소리는

동산 넘어 깊이도 사라지고

물같이 갈앚은 모래언덕은

속 아픈 명상(瞑想)에 저물어 간다.

 

 


 

 

이장희 시인 / 비오는 날

 

 

쓸쓸한 정서(情緖)는

커어튼을 잡아 늘이며

窓 너머 빗소리를 듣고 있더니

불현듯 도깨비의 걸음걸이로

몽롱한 우경(雨景)에 비틀거리며

뜰에 핀 선홍(鮮紅)의 진달래꽃을

함부로 뜯어 입에 물고

다시 머 ─ㄴ 버드나무를 안고 돌아라

 

이장희 시인 / 달밤 모래 위에서

 

갈대 그림자 고요히 흩어진 물가의 모래를

사박 사박 사박 거닐다가

나는 보았습니다 아아 모래 위에

자빠진 청개구리의 불룩하고 하이얀 배를

그와 함께 나는 맡았습니다

야릇하고 은은한 죽음의 비린내를

슬퍼하는 이마는 하늘을 우러르고

푸른 달의 속삭임을 들으려는 듯

나는 모래 위에 말없이 섰더이다

 

 


 

 

이장희 시인 / 겨울밤

 

 

눈비는 개였으나

흰 바람은 보이듯 하고

싸늘한 등불은 거리에 흘러

거리는 푸르른 유리창(琉璃窓)

검은 예각(銳角)이 미끄러 간다.

 

고드름 매달린

저기 저 처마 끝에

서울의 망령(亡靈)이 떨고 있다

풍지같이 떨고 있다.

 

- [생장] 5호, 1925년 5월-

 

 


 

이장희 시인(李章熙 : 1900~1929)

1900년 1월 1일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집안은 대구의 부호였으며 부친 이병학은 친일파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그의 친어머니였던 박금련은 이장희가 5세때 사망하고 계모 슬하에서 자랐다. 그의 부친은 3번을 결혼하였으며 형제는 10남 8녀였다. 대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중학교 졸업하였다. 《금성(金星)》지의 동인이 되어 동지에 《청천(靑天)의 유방(乳房)》《실바람 지나간 뒤》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였다.

우울하고 비사교적인 성격 때문에 이상화, 양주동, 백기만 등 일부 친분이 있는 문인들만 교우하였고 작품도 많이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안으로 파고드는 깊은 감성(感性)은 섬세한 감각과 심미적인 이미지를 작품에 표출시켜 《봄은 고양이로다》《하일소경(夏日小景)》 등의 주옥같은 시편을 남겼다. 복잡한 가정환경과 친일파인 부친이 조선총독부 관리로 취업을 강요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였고 결국 부친과의 갈등으로 집을 나와 궁핍하고 고독한 생활을 보냈다. 1929년 11월 28세를 일기로 음독자살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앞에 든 것 외에 《석양구(夕陽丘)》《동경(憧憬)》《고양이의 꿈》《봄철의 바다》《눈은 나리네》《연(鳶)》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