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시인 /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來日)은... 원제 :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來日)은 이길 것이다
말 없어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옆에는 네가 네 옆에는 또 다른 가슴들이 가슴 태우며 한 가지 염원으로 행진
말 없어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앞에는 사랑이 사랑 앞에는 죽음이 아우성 죽이며 억(億)진 나날 넘어갔음을.
우리는 이길 것이다 구두 밟힌 목덜미 생풀 뜯은 어머니 어둔 날 눈 빼앗겼어도.
우리는 알고 있다. 오백년 한양 어리석은 자 떼 아직 몰려 있음을.
우리들 입은 다문다. 이 밤 함께 겪는 가난하고 서러운 안 죽을 젊은이.
눈은 포도 위 묘향산 기슭에도 속리산 동학골 나려 쌓일지라도 열 사람 만 사람의 주먹팔은 묵묵히 한 가지 염원으로 행진
고을마다 사랑방 찌갯그릇 앞 우리들 두쪽 난 조국의 운명을 입술 깨물며
오늘은 그들의 소굴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
신동엽전집, 창작과비평사, 1975
신동엽 시인 / 산(山)에도 분수(噴水)를
산에도 들에도 분수를. 농촌에도 도시에도 분수를.
태양 쏟아지는 반도의 하늘, 사시사철 시원한 의지, 무지개 돋게. 산에도 들에도 분수를. 목장지대 우거지고 남북평야 기름지게. 속 시원히 낡은 것 밀려가고 외세도 근접 못하게, 태백산 지맥(地脈) 속서 솟는 지하수로 수억만 개의 분수 터놨으면.
농어촌에도 김포공항에도 분수 치솟았으면. 침략도 착취도 발 못 붙이게. 반도를 가로지른 가시줄, 씻겨 가 버리게,
우리의 머리마다 속 시원한 분수.
신동아(新東亞), 1966. 11
신동엽 시인 / 새해 새 아침은
새해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 않았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대화 우리의 눈빛 속에서 열렸다.
보라 발 밑에 널려진 골짜기 저 높은 억만개의 산봉우리마다 빛나는 눈부신 태양 새해엔 한반도 허리에서 철조망 지뢰들도 씻겨갔으면,
새해엔 아내랑 꼬마아이들 손 이끌고 나도 그 깊은 우주의 바다에 빠져 달나라나 한 바퀴 돌아와 봤으면,
허나 새해 새 아침은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오지 않는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안창 영원으로 가는 수도자의 눈빛 속에서 구슬짓는다.
주간경향,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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