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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신동엽 시인 /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來日)은…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7.

신동엽 시인 /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來日)은...

원제 :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來日)은 이길 것이다

 

 

말 없어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옆에는 네가 네 옆에는

또 다른 가슴들이

가슴 태우며

한 가지 염원으로

행진

 

말 없어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앞에는 사랑이 사랑 앞에는 죽음이

아우성 죽이며 억(億)진 나날

넘어갔음을.

 

우리는 이길 것이다

구두 밟힌 목덜미

생풀 뜯은 어머니

어둔 날 눈 빼앗겼어도.

 

우리는 알고 있다.

오백년 한양

어리석은 자 떼 아직

몰려 있음을.

 

우리들 입은 다문다.

이 밤 함께 겪는

가난하고 서러운

안 죽을 젊은이.

 

눈은 포도 위

묘향산 기슭에도

속리산 동학골

나려 쌓일지라도

열 사람 만 사람의 주먹팔은

묵묵히

한 가지 염원으로

행진

 

고을마다 사랑방 찌갯그릇 앞

우리들 두쪽 난 조국의 운명을 입술 깨물며

 

오늘은 그들의 소굴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

 

신동엽전집, 창작과비평사, 1975

 

 


 

 

신동엽 시인 / 산(山)에도 분수(噴水)를

 

 

산에도 들에도 분수를.

농촌에도 도시에도 분수를.

 

태양 쏟아지는 반도의 하늘, 사시사철 시원한

의지, 무지개 돋게.

산에도 들에도 분수를.

목장지대 우거지고 남북평야 기름지게.

속 시원히 낡은 것 밀려가고 외세도 근접 못하게,

태백산 지맥(地脈) 속서 솟는 지하수로 수억만 개의 분수 터놨으면.

 

농어촌에도 김포공항에도 분수 치솟았으면.

침략도 착취도 발 못 붙이게.

반도를 가로지른 가시줄, 씻겨 가 버리게,

 

우리의 머리마다 속 시원한 분수.

 

신동아(新東亞), 1966. 11

 

 


 

 

신동엽 시인 / 새해 새 아침은

 

 

새해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 않았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대화

우리의 눈빛 속에서

열렸다.

 

보라

발 밑에 널려진 골짜기

저 높은 억만개의 산봉우리마다

빛나는

눈부신 태양

새해엔

한반도 허리에서

철조망 지뢰들도

씻겨갔으면,

 

새해엔

아내랑 꼬마아이들 손 이끌고

나도 그 깊은 우주의 바다에 빠져

달나라나 한 바퀴

돌아와 봤으면,

 

허나

새해 새 아침은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오지 않는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안창

영원으로 가는 수도자의 눈빛 속에서

구슬짓는다.

 

주간경향, 1959

 

 


 

 

신동엽 시인(1930년-1969년)

신동엽(申東曄,)은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서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3년 부여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국가에서 숙식과 학비를 지원해 주는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1949년 부여 주변에 있는 국민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으나 3일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가 그해 9월 말까지 부여 민족청년회 선전부장으로 일하다 국민방위군에 징집됐다.

1953년 단국대를 졸업한 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자취방을 얻어 친구의 도움으로 돈암동 네 거리에 헌책방을 열었다. 신동엽은 이때 이화여고 3학년이던 부인 인병선을 만났다. 1957년 인병선과 결혼한 뒤 고향으로 낙향하여 충남 보령군 주산농업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58년 각혈을 동반한 폐결핵을 앓게 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 돈암동 처가에 아내와 자녀를 올려 보낸 뒤 고향 부여에서 요양하며 독서와 글쓰기에 빠진다. 1959년 독서와 문학 습작에 몰두하다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를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