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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신동엽 시인 / 한마음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8.

신동엽 시인 / 한마음

-  신동엽  한 마음 가엽서라

 

 

  돛도

  삳도 없이

  오날은 어델 흘러가나뇨

 

  온 길을 돌아갈 수 없음이여.

  유리창 넘어로 보히는

  만지기 영 틀린

  없어진 탑이여.

 

  한 마음

  가엽서라

  나약한 사람 우에서

  살아가는 

 

  가다가 슬어질

  가난한 마음이여.

 

 


 

 

신동엽 시인 / 五月(오월)의 눈동자

 

 

  지금 난 너를 보고 있지 않노라.

  훈풍 나부끼던 머리칼

  오월의 푸라타나스 가로(街路) 저 멀리

  두고 온 보리밭 어덕을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아니노라.

  바람이 기어드는 가슴

  나뭇잎 피는 산등성에 서서

  술익는 마당

  두고 온 눈동자를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아니노라.

  남해바다 멀리

  한번도 나의 울 안에

  춤춰본 적 없는

  푸른 빛 희열에 찬 생의 향기를

  그윽한 새 잎에 받들어

  나는 지금 마셔 주고 있노라,

  온 마음 밭으로 깊이깊이 들여마셔 주고 있는 것이노라.

 

  지금 난 너의 눈동자를 보고 있지 않노라.

  지나온 하늘

  草綠庭園(초록정원)에 딩굴던

  태양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있는 것도 아니노라.

  학창시절의 호밀밭 전쟁이 뭉개고 간 꽃잎의 촉촉한 밤하늘을

  회상하고 있는 것도 아니노라.

  훈풍에 날리던 머리칼

  山頂(산정)을 돌아 오르면

  온 세계의 아름다웠던

  천만가지 머언 오월의 향기를

  나의 피알 속에

  상기 살아있는 피 한 방울 감격 속에서

  이렇게 새 잎 타고 불어오는 바람 언덕에 서서

  오늘도 내일도 그제도

  머리다발 날리며

  마셔보고만 싶었었노라.

 

 


 

 

신동엽 시인 / 아사달과 아사녀

 

<아사녀>

 

   달이 뜨거든 제 얼굴 보셔요

   꽃이 피거든 제 입술을 느끼셔요

   바람 불거든 제 속삭임 들으셔요

   냇물 맑거든 제 눈물 만지셔요

   높은 산 울창커든 제 앞가슴 생각하셔요

 

<아사달>

 

   당신은 귀여운 나의 꽃송이

   당신은 드높은 내 영원의 꿈

   울다 돌아간 가여운 내 마음

   당신은 내 예술 만발케 사랑준 영감의 근원.

 

<2중창>

 

   우리들은 헤어진 게 아녜요

   우리들은 나뉘인게 아녜요

   우리들은 딴 세상 본 게 아녜요

   우리들은 한 우주 한 천지 한 바람 속에

   같은 시간 먹으며 영원을 살아요

   잠시 눈 깜박 사이 모습은 다르지만

   나중은 같은 공간 속에 살아요

   꼭같은 노래 부르며

   한가지 허무 속에 영원을 살아요.

 

  


 

 

신동엽 시인(1930년-1969년)

신동엽(申東曄,)은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서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3년 부여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국가에서 숙식과 학비를 지원해 주는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1949년 부여 주변에 있는 국민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으나 3일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가 그해 9월 말까지 부여 민족청년회 선전부장으로 일하다 국민방위군에 징집됐다.

1953년 단국대를 졸업한 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자취방을 얻어 친구의 도움으로 돈암동 네 거리에 헌책방을 열었다. 신동엽은 이때 이화여고 3학년이던 부인 인병선을 만났다. 1957년 인병선과 결혼한 뒤 고향으로 낙향하여 충남 보령군 주산농업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58년 각혈을 동반한 폐결핵을 앓게 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 돈암동 처가에 아내와 자녀를 올려 보낸 뒤 고향 부여에서 요양하며 독서와 글쓰기에 빠진다. 1959년 독서와 문학 습작에 몰두하다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를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