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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변영로 시인 / 가을하늘 밑에 서서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30.

변영로 시인 / 가을하늘 밑에 서서

 

 

엄청나게 높고 깊은 하늘,

어이없이도 새파란 가을하늘!

끔찍한 당신의 천막(天幕)이로소이다

오오, 님이시여!

 

끔찍하게 넓은 하늘― 당신의 천막(天幕)!

만유는 다 당신의 군대(軍隊)이로소이다―

왕도 거지도 바다도 산도,

오오, 님이시여!

 

조선의 마음, 평문관, 1924

 

 


 

 

변영로 시인 / 그 때가 언제나 옵니까

 

 

그대와 내 사이에

모든 가리움 없어지고,

넓은 햇빛 가운데

옷으로 가리우지 아니한

발가벗은 맨몸으로

얼굴과 얼굴을 대할

그때가 언제나 옵니까

 

`사랑'과 `믿음'의 불꽃이

낡은 `말'을 사루어

그대와 내 사이에

말없이 서로 알아 듣고,

채침 없이 서로 붙잡고,

음욕 없이 서로 껴안을

그때가 언제나 옵니까

 

오, 그대! 나의 영혼(靈魂)의 벗인 그대!

우리가 그리우는 `그때'가 오면은,

`우리 세기(世紀)의 아츰'이 오면은

그때는 그대와 내가

부끄러워 눈을 피하지 않을 터이지요,

두려워 몸을 움츠러트리지 않겠지요,

오, 그대! 언제나 그때가 옵니까?

 

조선의 마음, 평문관, 1924

 

 


 

 

변영로 시인 / 기분전환(氣分轉換)

 

 

동무야, 나의 사랑하는 동무야,

잊어라, 곱게 잊어라―

`슬픔은 푸른 깊은 바다로서,

기쁨은 옅은 시내물로서.'

라는 옛노래를.

 

동무야, 나의 사랑하는 동무야,

새겨라, 가슴 깊이 새겨라―

`울음은 낮게 달리운 구름으로서,

웃음은 높게 개인 하늘로서.'

라는 새 곡조를!

 

조선의 마음, 평문관, 1924

 

 


 

변영로 [卞榮魯, 1897.5.9 ~ 1961.3.14] 시인

1898년 서울에서 출생. 아호는 수주(樹州). 시인이며 수필가와 ·영문학자로 활동. 시집으로 『조선의 마음』,『수주 시문선』, 영시집『진달래 동산』이 있음. 이화여전·성균관대 교,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초대 회장, 동아일보 기자·대한공론사 이사장 등을 역임. 서울시 문화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