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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상용 시인 / 어미소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29.

김상용 시인 / 어미소

 

 

산성(山城)을 넘어 새벽 들이 온 길에

자욱자욱 새끼가 그리워

슬픈 또 하루의 네 날이

내[煙] 끼인 거리에 그므는도다.

 

바람 한숨 짓는 어느 뒷골목

네 수고는 서 푼에 팔리나니

눈물도 잊은 네 침묵(沈黙)의 인고(忍苦) 앞에

교만(驕慢)한 마음의 머리를 숙인다.

 

푸른 초원(草原)에 방만(放漫)하던 네 조상(祖上)

맘 놓고 마른 목 축이든 시절(時節)엔

굴레 없는 씩씩한 얼굴이

태초청류(太初淸流)에 비쵠 일도 있었거니……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추억(追憶)

 

 

걷는 수음(樹陰) 밖에

달빛이 흐르고,

 

물에 씻긴 수정(水晶)같이

내 애상(哀傷)이 호젓하다.

 

아―한 조각 구름처럼

무심(無心)하던들

그 저녁의 도성(濤聲)이 그리워

이 한밤을 걸어 새기야 했으랴?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한잔 물

 

 

목마름 채우려든 한잔 물을

땅 우에 엎질렀다.

 

너른 바다 수많은 파두(波頭)를 버리고

하필(何必) 내 잔에 담겼든 물.

 

어느 절벽 밑 깨어진 굽일런지―

어느 산모루 어렸던 구름의 조각인지―

어느 나무잎 우에

또 어느 꽃송이 우에

나려졌던 구슬인지―

이름 모를 골을 나리고

적고 큰 돌 사이를 지난 나머지

내 그릇을 거쳐

물은 제 길을 갔거니와……

 

허젓한 마음

그릇의 비임만을 남긴

아― 애달픈 추억(追憶)아!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향수(鄕愁)

 

 

인적(人跡) 끊긴 산(山) 속

돌을 베고

하늘을 보오.

 

구름이 가고,

있지도 않은 고향(故鄕)이 그립소.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황혼(黃昏)의 한강(漢江)

 

 

`고요함'을 자리인 양 편 `흐름' 위에

식은 심장(心臟) 같이 배 한 조각이 떴다.

 

아―긴 세월(歲月), 슬픔과 기쁨은 씻겨가고

예도 이젠 듯 하늘이 저기에 그믄다.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金尙鎔) 시인 / 1902∼1955

호:월파(月坡). 시인. 경기도 연천에서 출생.

일본 릿쿄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8.15광복 전까지 이화 여전 교수를 지냈다. 1930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서정시 [무상] [그러나 거문고 줄은 없고나]등의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포와키츠, 램 등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1939년에 간행한 그의 첫 시집 <망향>에는 대표작 [남으로 창을 내겠소] [서글픈 꿈] [노래 잃은 뻐꾹새]등이 실려 있다.

그의 시에는 우수와 체념이 깃든 관조적인 서정의 세계가 담겨져 있다. 8.15광복 후 군정 시절에 한때 강원도 도지사를 지냈고, 이어서 이화 여대 교수로 있다가 1948년에 도미, 1년 만에 귀국한 후 1.4후퇴 때에 부산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풍자적인 수필집 <무하 선생 방랑기., 시 <산에 묻어>와 번역 작품으로 하디의 소설 <아내를 위하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