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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상용 시인 / 물고기 하나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28.

김상용 시인 / 물고기 하나

 

 

웅뎅이에 헤엄치는 물고기 하나

그는 호젓한 내 심사(心思)에 길렸다.

 

돌새, 너겁 밑을 갸웃거린들

지난밤 저 버린 달빛이

허무(虛無)로이 여직 비칠 리야 있겠니?

 

지금 너는 또 다른 웅뎅이로 길을 떠나노니

나그네 될 운명(運命)이

영원(永遠) 끝날 수 없는 까닭이냐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반딧불

 

 

너는 정밀(靜謐)의 등촉(燈燭)

신부(新婦) 없는 동방(洞房)에 잠그리라

 

부러워하는 이도 없을 너를

상징(象徵)해 왜 내 맘을 빚었던지

 

헛고대의 밤이 가면

설운 새 아침

가만히 네 불꽃은 꺼진다.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새벽 별을 잊고

 

 

새벽 별을 잊고

산국(山菊)의 `맑음'이 불러도

겨를 없이

길만을 가노라.

 

길!

아―먼 진흙 길

 

머리를 드니

가을 석양(夕陽)에

하늘은 저러히 멀다.

 

높은 가지의

하나 남은 잎새!

 

오래만에 본

그리운 본향(本鄕)아.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서글픈 꿈

 

 

뒤로 산(山)

숲이 둘리고

돌새에 샘 솟아 적은 내 되오.

 

들도 쉬고

잿빛 메뿌리의

꿈이 그대로 깊소.

 

폭포(瀑布)는 다음 골[谷]에 두어

안개냥 `정적(靜寂)'이 잠기고……

나와 다람쥐 인(印)친 산길을

넝쿨이 아셨으니

나귀 끈 장꾼이

찾을 리 없소.

 

`적막(寂寞)' 함께 끝내

낡은 거문고의

줄이나 고르랴오.

 

긴 세월(歲月)에게

추억(追憶)마저 빼앗기면

 

풀잎 우는 아침

혼자 가겠소.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金尙鎔) 시인 / 1902∼1955

호:월파(月坡). 시인. 경기도 연천에서 출생.

일본 릿쿄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8.15광복 전까지 이화 여전 교수를 지냈다. 1930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서정시 [무상] [그러나 거문고 줄은 없고나]등의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포와키츠, 램 등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1939년에 간행한 그의 첫 시집 <망향>에는 대표작 [남으로 창을 내겠소] [서글픈 꿈] [노래 잃은 뻐꾹새]등이 실려 있다.

그의 시에는 우수와 체념이 깃든 관조적인 서정의 세계가 담겨져 있다. 8.15광복 후 군정 시절에 한때 강원도 도지사를 지냈고, 이어서 이화 여대 교수로 있다가 1948년에 도미, 1년 만에 귀국한 후 1.4후퇴 때에 부산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풍자적인 수필집 <무하 선생 방랑기., 시 <산에 묻어>와 번역 작품으로 하디의 소설 <아내를 위하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