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하운 시인 / 목숨
쓰레기통과 쓰레기통과 나란히 앉아서 밤을 새운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죽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아직도 살아 있는 목숨이 꿈틀 만져진다.
배꼽 아래 손을 넣으면 37도의 체온이 한 마리의 썩어가는 생선처럼 뭉클 쥐어진다.
이 하나밖에 없는 나에게 나의 목숨은 아직도 하늘에 별처럼 또렷한 것이냐.
한하운 시인 / 추우일기(秋雨日記)
아치라운 일이다 네 싸늘한 서글픔을 눈으로는 노려보지 말아라
모두다 모두다 다 이름있는 모든 것이다 가느다란히 정맥에 살아서 숨 쉬는 나무여 풀이며 잎잎 떨어지는데
싹 다린 옥색 모시치마 사뿐히 꽂아지른 옷맵시 참다 못하여 부서질 듯이 돌아서면서 흐느껴 눈물로 옷깃을 적시는가
한하운 시인 / 냉수(冷水) 마시고 가련다
산천아 구름아 하늘아 알고도 모르는 척할 것이로되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를 말라.
구름아 또 흐르누나 나는 가고 너는 오고 하늘과 땅 사이에서 너와 나의 헛갈리누나.
아 아 하늘이라면 많은 별과 태양과 구름을 가졌더냐
이렇듯 맑은 세월도 푸른 地平도 건강한 生도 평등할 幸도 나와는 머얼지도 가깝지도 못할 못내 허공에도 끼어질 틈이 없다.
삼라만상은 상호부조의 깍지를 끼고 을스꿍 저 좋은 곳으로만 돌아가는가
산천아 내 너를 알기에 냉수 마시고 가련다.
기어코 허락할 수 없는 생명을 지닌 내 목으로 너를 들이키기엔 너무나도 시원한 이해이어라.
한하운 시인 / 리라꽃 던지고
P孃 몇 차례나 뜨거운 편지 받았습니다
어쩔줄 모르는 충격에 외로와지기만 합니다
孃이 보내주신 사진은,얼굴은 五月의 아침 아까시아꽃 청초로 침울한 내병실에 久遠의 마스콧으로 반겨줍니다
눈물처럼 아름다운 양의 淸淨無垢한 사랑이 灰色에 포기한 나의 사랑의 窓門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醫學을 전공하는 孃에게 이 너무나도 또렷한 문둥이의 病理學은 모두가 不條理한 것 같고 이세상에서는 안될 일이라 하겠습니다
P孃 울음이 터집니다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이 사랑을 아끼는 울음을 곱게 그칩시다
그리고 차라리 아름답게 잊도록 더없는 노래를 엮으며 마음이 가도록 그 노래를 눈물 삼키며 부릅시다
G線의 엘레지가 비창하는 덧없는 노래를 다시 엮으며
이별이 괴로운대로 리라꽃 던지고 노래 부릅니다.
한하운 시인 / 도라지꽃
도라지꽃 도라지꽃.
첩첩 산 두메.
山曆은 木石
바람에 도리 머리
도라지꽃 도라지꽃.
도라지꽃 도라지꽃.
산두메 山歲月.
산새야 우지마
바람에 山曲調
도라지꽃 도라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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