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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상용 시인 / 눈오는 아침 외 8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27.

김상용 시인 / 눈오는 아침

 

 

눈오는 아침은

가장 성(聖)스러운 기도(祈禱)의 때다.

 

순결(純潔)의 언덕 우

수묵(水墨)빛 가지가지의

이루어진 솜씨가 아름다워라.

 

연기는 새로

탄생(誕生)된 아기의 호흡(呼吸)

닭이 울어

영원(永遠)의 보금자리가 한층 더 따스하다.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마음의 조각 1

 

 

허공(虛空)이 스러질

나는 한 점의 무(無)로―

 

풀 밑 벌레 소리에,

생(生)과 사랑을 느끼기도 하나

 

물거품 하나

비웃을 힘이 없다.

 

오직 회의(懷疑)의 잔을 기울이며

야윈 지축(地軸)을 서러워하노라.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마음의 조각 2

 

 

임금 껍질만한 열정(熱情)이나 있느냐?

`죽음'의 거리여!

 

썩은 진흙골에서

그래도 샘 찾는 몸이 될까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마음의 조각 3

 

 

고독을 밤새도록 잔질하고 난 밤,

새 아침이 눈물 속에 밝았다.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마음의 조각 4

 

 

달빛은

처녀의 규방으로 들거라.

내 넋은

암흑과 짝진 지도 오래거니―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마음의 조각 5

 

 

향수(鄕愁)조차 잊은 너를

또야 부르랴?

오늘부턴

혼자 가련다.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마음의 조각 6

 

오고 가고

나그네 일이오

 

그대완 잠시

동행이 되고.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마음의 조각 7

 

 

사랑은 완전(完全)을 기원(祈願)하는 맘으로

결함(缺陷)을 연민(憐憫)하는 향기(香氣)입니다.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 시인 / 마음의 조각 8

 

 

생(生)의 `길이'와 폭(幅)과 `무게' 녹아,

한낱 구슬이 된다면

붉은 `도가니'에 던지리다.

 

심장(心臟)의 피로 이루어진

한 구(句)의 시(詩)가 있나니―

 

`물'과 `하늘'과 `님'이 버리면

외로운 다람쥐처럼

이 보금자리에 쉬리로다.

 

망향, 문장사, 1939

 

 


 

김상용(金尙鎔) 시인 / 1902∼1955

호:월파(月坡). 시인. 경기도 연천에서 출생.

일본 릿쿄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8.15광복 전까지 이화 여전 교수를 지냈다. 1930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서정시 [무상] [그러나 거문고 줄은 없고나]등의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포와키츠, 램 등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1939년에 간행한 그의 첫 시집 <망향>에는 대표작 [남으로 창을 내겠소] [서글픈 꿈] [노래 잃은 뻐꾹새]등이 실려 있다.

그의 시에는 우수와 체념이 깃든 관조적인 서정의 세계가 담겨져 있다. 8.15광복 후 군정 시절에 한때 강원도 도지사를 지냈고, 이어서 이화 여대 교수로 있다가 1948년에 도미, 1년 만에 귀국한 후 1.4후퇴 때에 부산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풍자적인 수필집 <무하 선생 방랑기., 시 <산에 묻어>와 번역 작품으로 하디의 소설 <아내를 위하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