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시인 / 선사(禪師)의 설법(說法)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끝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즐거우리라" 고 선사는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선사는 어지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이운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 매는 것이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해탈(大解脫)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얽은 님의 사랑의 줄이 약할까 봐서 나의 님을 사랑하는 줄을 곱들였습니다.
한용운 시인 / 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白髮)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주검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한용운 시인 / 사랑의 측량(測量)
즐겁고 아름다운 일은 양(量)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사랑은 양이 적을수록 좋은가 봐요.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의 두 사람의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양을 알려면 당신과 나의 거리를 측량(測量)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과 나의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量)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量)이 적을 것입니다.
그런데 적은 사랑은 나를 웃기더니 많은 사랑은 나를 울립니다.
사람이 멀어지면 사랑도 멀어진다고 하여요. 당신이 가신 뒤로 사랑이 멀어졌는데, 날마다 날마다 나를 울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무었입니까.
한용운 시인 / 사랑을 사랑하여요
당신의 얼굴은 봄하늘의 고요한 별이어요. 그러나 찢어진 구름 사이로 돋아오는 반달 같은 얼굴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어여쁜 얼굴만을 사랑한다면 왜 나의 베갯모에 달을 수놓지 않고 별을 수놓아요.
당신의 마음은 티없는 순옥이어요. 그러나 곱기도 밝기도 굳기도 보석같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아름다운 마음만을 사랑한다면 왜 나의 반지를 보석으로 아니하고 옥으로 만들어요. 당신의 시는 봄비에 새로 눈트는 금결같은 버들이어요. 그러나 기름같은 검은 바다에 피어 오르는 백합꽃 같은 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좋은 문장만을 사랑한다면 왜 내가 꽃을 노래하지 않고 버들을 찬미하여요.
왼 세상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아니 할 때에 당신만이 나를 사랑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여요 나는 당신의 사랑을 사랑하여요.
|
'◇ 시인과 시(근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하운 시인 / 목숨 외 4편 (0) | 2019.08.28 |
---|---|
김상용 시인 / 눈오는 아침 외 8편 (0) | 2019.08.27 |
조병화 시인 / 곁에 없어도 외 3편 (0) | 2019.08.27 |
김상용 시인 / 가을 외 5편 (0) | 2019.08.26 |
한용운 시인 / 인연설 외 4편 (0) | 2019.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