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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한용운 시인 / 인연설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26.

한용운 시인 / 인연설

 

 

정말 사랑하고 있는 사람앞에는

생각한다는 말을 안합니다

안하는 것이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리입니다

잊어야 겠다는 말은 잊을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때 잊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때 돌아보지 않을때는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아니라

언제나 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못잊는 것이요

그만큼 그 사람과 사랑했다는 것이요

그러나 알수 없는 표정은

이별의 시초이며 이별의 시달림입니다

떠날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가다가 달려오면 사랑하니 잡아달라는 것이요

가다가 멈추면 다시 한번 더보고 싶다는 것이요

뛰다가 전봇대에 기대어 울면

오직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한용운 시인 / 이별은 미의 창조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없는 황금과

밤의 올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여 !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 이별이여.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한용운 시인 / 예술가(藝術家)

 

 

나는 서투른 화가(畵家)여요.

잠아니 오는 잠자리에 누워서 손가락을 가슴에 대이고

당신의 코와 입과 두 볼에 새암 파지는 것까지 그렸읍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작은 웃음이 떠도는 당신의 눈자위는

그리다가 백번이나 지웠읍니다.

나는 파겁 못한 성악가(聲樂家)여요.

이웃 사람도 돌아가고 버러지 소리도 그쳤는데 당신의 가르쳐 주시던 노래를

부르랴다가 조는 고양이가 부끄러워서 부르지 못하였읍니다.

그래서 가는 바람이 문풍지를 스칠 때에 가만히 합창(合唱) 하였읍니다.

나는 서정시인(抒情詩人)이 되기에는 너무도 소질이 없나 봐요.

 

 


 

 

한용운 시인 / 슬픔의 삼매(三昧)

 

 

하늘의 푸른빛과 같이 깨끗한 죽음은 군동(群動)은 정화(淨化)합니다.

허무의 빛인 고요한 밤은 대지에 군림하였습니다.

힘없는 촛불 아래에 사리뜨리고 외로이 누워 있는 오 오, 님이여!

눈물의 바다에 꽃배를 띄웠습니다.

꽃배는 님을 싣고 소리도 없이 가라앉았습니다.

나는 슬픔의 삼매에 '아공(我空)' 이 되었습니다.

 

꽃향기의 무르녹은 안개에 취하여 청춘의 광야에 비틀걸음 치는 미인이여.

죽음을 기러기 털보다도 가볍게 여기고, 가슴에 타오르는 불꽃을

얼음처럼 마시는 사랑의 광인(狂人)이여.

아아, 사랑에 병들어 자기의 사랑에게 자살을 권고하는 사랑의 실패자여.

그대는 만족한 사랑을 얻기 위하여 나의 팔에 안겨요.

나의 팔은 그대의 사랑의 분신인 줄을 그대는 왜 모르셔요.

 

 


 

 

한용운 시인 / 수(繡)의 비밀

 

 

나는 당신의 옷을 다 지어 놓았읍니다.

심의(深衣)도 짓고 도포도 짓고 자리 옷도 지었읍니다.

짓지 아니한 것은 작은 주머니에 수 놓은 것 뿐입니다.

 

그 주머니는 나의 손때가 많이 묻어 있읍니다.

짓다가 놓아두고 짓다가 놓아두고 한 까닭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바느질 솜씨가 없는 줄로 알지마는,

그러한 비밀은 나 밖에 아는 사람이 없읍니다.

나는 마음이 아프고 쓰린때에 주머니에 수를 놓으면

나의 마음은 수 놓은 금실을 따라서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고

주머니 속에서 맑은 노래가 나와서 나의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아직 이 세상에는 그 주머니에 넣을 만한 무슨 보물이 없읍니다.

이 작은 주머니는 짓기 싫어서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짓고 싶어서 다 짓지 않은 것입니다.

 

 


 

만해 한용운 [卍海 韓龍雲 1879.8.29 ~ 1944.6.29] 시인

1879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 1918년 월간지 『유심』을 발간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주로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구제를 노래했음. 3.1운동 당시에는 33인을 대표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여 피검되어 3년간의 옥고 치름. 불교의 대중화와 항일독립사상의 고취에 힘을 기울였으며, 1944년 입적.

조선의 불교계 및 독립운동에 지대한 업적을 남겨,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 수여되고 1967년 탑골 공원에 용운당만해대선사비가 건립됨.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 외에 『조선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정선강의채근담』 등이 있으며 사후에『한용운전집』, 『한용운시전집』이 간행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