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시인 / 나의 육체는
나의 육체는 자학과 번뇌,고독이 긴 세월을 숨어서 부패 발효되어 스스로 짙게 가라앉아 고인 독한 맑은 술이옵니다.
짙은 독한 맑은 그 술이 긴 세월을 숨어서 스스로 증류되어 고인 맑은 눈물이옵니다.
스스로 취하는
조병화 시인 /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 -아가 제6장
너의 집은 하늘에 있고 나의 집은 풀 밑에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너는 먼 별 창 안에 밤을 재우고 나는 풀벌레 곁에 밤을 빌린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잔다
너의 날은 '내일'에 있고 나의 날은 '어제'에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세월이다
문 닫은 먼 자리, 가린 자리 너의 생각 밖에 내가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있다
너의 집은 하늘에 있고 나의 집은 풀 밑에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조병화 시인 / 나는 긴 인생을
나는 당신을 만난 것을 후회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한 것을 후회합니다. 그리고 당신과 헤어진 것을 후회합니다.
그리고 당신과 만난 것을 고마운 인연으로, 당신과 헤어져서 잊지 못하는 것을 사랑으로, 이렇게 오래 긴 세월을 하늘의 은총으로 살고 있습니다.
인생이 그런 것처럼.
조병화 시인 / 꿈
내 손길이 네게 닿으면 넌 움직이는 산맥이 된다 내 입술이 네게 닿으면 넌 가득 찬 호수가 된다
호수에 노를 저으며 호심으로 물가로
수초 사이로 구름처럼 내가 가라앉아 돌면 넌 눈을 감은 하늘이 된다
어디선지 노고지리
가물가물 먼 아지랭이
네 눈물이 내게 닿으면 난 무너지는 우주가 된다.
조병화 시인 / 길
산을 넘어도 산 고개를 넘어도 고개 개울을 넘어도 개울 길은 그저 묵묵히 간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사방 텅 비어 있는 우주 끝이 보이지 않는 길 길은 그저 묵묵히 이어진다.
길을 따라 나선 마음 기다리는 사람은 없어도 그저 길을 따라 가고픈 마음.
산을 넘어도 고개를 넘어도 개울을 넘어도 산을 넘어도 그저 묵묵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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