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시인 / 재촉 편지
피었을 제 꽃이지 지면 티끌일 뿐 이 사람아 피었을 제, 젊었을 제 꽃이지, 지면 그뿐일 뿐. 다 지고 난 뒤 깨달으면 어쩌자는가 애달파라, 내 편지엔 오늘도 화답이 없네.
해당화, 삼천리사, 1942
김동환 시인 / 지열(地熱)
큰 바위도 지열이 쏘이면 엿물같이 녹아 흐르다가 그 열이 한번 멈추는 날 다시 식어 그만 용암 되어 우뚝 선다 이 나라의 거리 거리엔 모두 가다가 멈춘 바위뿐 아까운 영웅도 제사도 바위 되어 노변에 섰을 뿐 어느 제 님이 입김 다시 불어 이 용암을 녹여 흘리려는고.
미발표(『돌아온 날개』), 1962
김동환 시인 / 첫날밤
자, 가자, 어서, 어서, 신부의 방으로 부끄러워 병풍 뒤에 숨죽이고 있는 나의 한낫 보금자리에 이 몸을 잊고자.
촛불 그림자 두려움에 떠는 그를 비춘다, 두 나래 활 버린 청춘이 방안에 와 앉는다 내일 아침 밝기 전 이 몸 어찌될 것 생각 말고 어서 가자.
자, 가자 어서, 어서 신부의 방으로 내가 조선에 바칠 오직 한낫 선물이 기다리고 있잖느냐 이 몸이 로서아로 간 뒤 뒤를 이을 한 개의 빨간 생명이.
오호, 신부는 병풍 뒤서 거룩한 일에 떨고 있다 하늘이 나를 시켜 전하는 보물 어서 님께 드리자 그래 어서 가자, 가자, 신부의 방으로!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김동환 시인 / 초인의 선언
소리개거든 그저 쏘아라, 하늘에 뜬― 어쩌면 맞을까고 망설이지 말고 먼저 쏘아라.
풀밭에 떨어졌거든 어디를 맞았는가 살피기 전에 먼저 숨이 끊어졌는가 보아라!
국경의 밤, 한성도서, 1924
김동환 시인 / 파업
펜을 던졌다 아침부터 동무하던 펜을 던졌다 그리고 의논하였다. 어떻게 하면 이길까고 주먹은 탁자를 부쉈다. 격정은 불길을 일으켰다 그리고 부르짖었다. 여럿은 유태교인이 되자고 `눈은 눈으로 이빨은 이빨로!' 하는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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