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시인 / 오월의 향기
오월의 하늘에 종달새 떠올라 `보표(譜表)'를 그리자 산나물 캐기 색시 푸른 공중 치어다 노래 부르네, 그 음부(音符) 보고 봄의 노래를.
봄의 노래 바다에 떨어진 파도를 울리고 산에 떨어진 종달새 울리더니 다시 하늘로 기어올라 구름 속 검은 소나기까지 올려 놓네.
검은 소나기 일만 실비를 물고 떨어지자 땅에는 흙이 젖물같이 녹아지며 보리밭이 석 자나 자라나네.
아, 오월의 하늘에 떠도는 종달새는 풍년을 물고 산에 들에 떨어지네, 떨어질 때 우린들 하늘밖이라 풍년이 안오랴.
오월의 산에 올라 풀 베다 소리치니 하늘이 넓기도 해 그 소리 다시 돌아앉으네 이렇게 넓다면 날아라도 가 보고 싶은 일 넋이라도 가 보라 또 소리쳤네.
벽에 걸린 화액(畵額)에 오월 바람에 터질 듯 익은 내 나라가 걸려 있네 꿈마다 기어 와선 놀다가도 날 밝기 무섭게 도로 화액(畵額) 속 풍경화가 되어 버리는 내 나라가.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김동환 시인 / 우리 만나던 시절이
우리 만나던 시절이 언제이던가구요 밭머리서 눈 같은 원두꽃 뜯어 머리 얹히고 춘향 각시 이야기에 물이 오르다가 뒷장태서 노루 쫓아 내리던 소동패에 들키어서 짐승 대신 우리들이 쫓기우기도 하였더니 그러니 아마 짙은 봄, 첫여름 무렵인걸요
우리 갈라지던 시절이 언제이던가구요 가지취, 고사리, 두릅순 나물을 뜯어 나는 그대 바구니에, 그대는 내 삼태기에 소먹이 꼴 베어 가득 담기로 내기해 놓고는 서로 마주보며 노래로 춤으로 해를 보내 놓고는 그만 손 털고 일어서던 철이니 초복 전일걸요
우리 다시 만나기로 언약한 때는 언제던가구요 뒷동산에 밤송이 익어서 툭툭 터져 알은 굴러 홈에 떨어지고 가시돋이 송이만이 내왕 길을 쫘―ㄱ 덮어, 가도오도 못하게 할 제 그대는 앞장태에 나는 뒷장태에 서서 서로 마주 쳐다보며 웃자고 할 때니 늦은 가을철인걸요
돌아온 날개, 1962
김동환 시인 / 우리 오빠
우리 오빠는 서울로 공부 갔네 첫해는 편지 한 장 둘째 해는 때묻은 옷 한 벌 셋째 해엔 부세 한 장 왔네.
우리 오빠는 서울 가서 한 해는 공부, 한 해는 징역, 그리고는 무덤에 갔다오.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김동환 시인 / 자장가
1
자거라 자거라 귀여운 아가야 꽃 속에 잠드는 범나비같이 고요히 눈감고 꿈나라 가거라 하늘 위 저 별이 잦을 때까지.
2
자거라 자거라 귀여운 아가야 금잔디에 잠드는 봄바람같이 고요히 눈감고 꿈나라 가거라 꽃잎을 날리는 바람 따라서.
3
자거라 자거라 귀여운 아가야 버들 속에 잠드는 파랑새같이 고요히 눈감고 꿈나라 가거라 꿈나라의 앵두밭을 어서 찾아서.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김동환 시인 / 장승
갈 때 보던 장승님은 비 오는 날도 동구 밖에 외로이 서서 기다리는데 물이라고 한 번 가면 올 줄 모르오, 금년도 장태엔 벌써 단풍잎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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