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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동환 시인 / 약산동대(東臺)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22.

김동환 시인 / 약산동대(東臺)

 

 

내 맘은 하루에도 열두 번이나

영변에 약산동대 진달래밭에

봄바람 가로 타고 흘러가노라.

 

거기엔 서도(西道) 각시 바구니 이고

멀리 간 님 생각에 노래 부르며

고운 꽃 골라 따서 한아름 담데.

 

바구니 가득 차면 잎은 버리고

꽃만 골라서 화전(花煎) 지지고

나중엔 꽃다발 틀어 얹고 오데.

 

해당화, 삼천리사, 1942

 

 


 

 

김동환 시인 / 약숫물터

 

 

뻐꾹새 따라

산으로 오르니

약숫물터에

깨어진 물동이,

 

어느 색시

성급하게도

물동이조차 버리고

그 사내 따라갔누.

 

해당화, 삼천리사, 1942

 

 


 

 

김동환 시인 / 언제 오시나

 

 

1

 

은행나무 그늘에 외로이 서서

서쪽 하늘 치어다 우는 저 각씨,

님 계신 곳 꽃잎도 폈다 지던가

적막강산 삼천리에 꽃만 져 가네.

 

2

 

얼었던 강물도 이제 녹아서

배 다니고 제비조차 날아오는데,

한 번 가신 그이만 올 줄 몰라라

서백리 아 하늘엔 구름만 아득.

 

3

 

크신 일에 바치신 귀한 몸이라

이 동산에 봄 올 때 오실 길이나,

바람결에 날리는 꽃잎을 보면

안타까워 은행가지 털며 운다오.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김동환 시인 / 오월의 하늘이 열리면

 

 

오월의 하늘이 열리면 벗이여

생황, 피리, 거문고 다 버리고 알몸으로 오시라

보리밭, 밀밭, 원두밭 제마다

가지가지의 고운 새가 아름다운 곡조로 그대를 맞아 주니

 

오월의 하늘이 열리면 벗이여

고까신, 면류관, 도홍(桃紅)띠 다 버리고 알몸으로 오시라

산골과 벌판을 거니는 사이에

이름 모를 꽃과 풀이 그대를 왕자(王子)같이 꾸며 놓으리

 

오월의 하늘이 열리면 벗이여

가난과 외롬과 근심을 다 잊고 알몸으로 오시라

여기 드높은 재에 올라 흐르는 구름 쳐다보느라면

부귀란 뜬구름, 부러울 것 없으리니

 

오월의 하늘이 열리면 벗이여

산으로 오사이다, 들로 오사이다

부자도 한 간 방, 미인도 한 줌 밥에 살거니

이 너른 벌판에 그대 오직 왕자(王者)로 거(居)하시리이다

 

미발표(『돌아온 날개』), 1962

 

 


 

김동환 [金東煥, 1901.9.21~?(납북)] 시인

1901년 함경북도 경성(鏡城)에서 출생. 본관 강릉. 호 파인(巴人). 창씨명(創氏名)은 시로야마 세이주[白山靑樹]. 중동(中東)학교를 졸업. 일본 도요[東洋]대학 문과 수학. 1924년 시 〈적성(赤星)을 손가락질하며〉로 《금성(金星)》誌에 추천을 받고 문단에 데뷔. 1925년 한국 최초의 서사시(敍事詩)로 일컬어지는 대표작이며 동명 시집인 《국경의 밤》을 간행. 민요적 색채가 짙은 서정시를 많이 발표하여 이광수(李光洙) ·주요한(朱耀翰) 등과 함께 문명을 떨침.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자로 근무.

1929년 월간지 《삼천리(三千里)》를 창간. 1938년 《삼천리문학(三千里文學)》 발간. 1939년 총독 미나미[南次郞]의 <새로운 동양의 건설> 등을 《삼천리》에 실어 잡지의 내선일체 체제를 마련한 그는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상임이사 등을 지내면서 적극적인 친일파로 변신. 1950년 6 ·25전쟁 때 납북되었으며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음. 저서로는 『승천(昇天)하는 청춘』, 『삼인시가집(三人詩歌集)』(李光洙 ·朱耀翰 공저), 『해당화』 등과 그외 다수의 소설 ·평론 ·수필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