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시인 / 약산동대(東臺)
내 맘은 하루에도 열두 번이나 영변에 약산동대 진달래밭에 봄바람 가로 타고 흘러가노라.
거기엔 서도(西道) 각시 바구니 이고 멀리 간 님 생각에 노래 부르며 고운 꽃 골라 따서 한아름 담데.
바구니 가득 차면 잎은 버리고 꽃만 골라서 화전(花煎) 지지고 나중엔 꽃다발 틀어 얹고 오데.
해당화, 삼천리사, 1942
김동환 시인 / 약숫물터
뻐꾹새 따라 산으로 오르니 약숫물터에 깨어진 물동이,
어느 색시 성급하게도 물동이조차 버리고 그 사내 따라갔누.
해당화, 삼천리사, 1942
김동환 시인 / 언제 오시나
1
은행나무 그늘에 외로이 서서 서쪽 하늘 치어다 우는 저 각씨, 님 계신 곳 꽃잎도 폈다 지던가 적막강산 삼천리에 꽃만 져 가네.
2
얼었던 강물도 이제 녹아서 배 다니고 제비조차 날아오는데, 한 번 가신 그이만 올 줄 몰라라 서백리 아 하늘엔 구름만 아득.
3
크신 일에 바치신 귀한 몸이라 이 동산에 봄 올 때 오실 길이나, 바람결에 날리는 꽃잎을 보면 안타까워 은행가지 털며 운다오.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김동환 시인 / 오월의 하늘이 열리면
오월의 하늘이 열리면 벗이여 생황, 피리, 거문고 다 버리고 알몸으로 오시라 보리밭, 밀밭, 원두밭 제마다 가지가지의 고운 새가 아름다운 곡조로 그대를 맞아 주니
오월의 하늘이 열리면 벗이여 고까신, 면류관, 도홍(桃紅)띠 다 버리고 알몸으로 오시라 산골과 벌판을 거니는 사이에 이름 모를 꽃과 풀이 그대를 왕자(王子)같이 꾸며 놓으리
오월의 하늘이 열리면 벗이여 가난과 외롬과 근심을 다 잊고 알몸으로 오시라 여기 드높은 재에 올라 흐르는 구름 쳐다보느라면 부귀란 뜬구름, 부러울 것 없으리니
오월의 하늘이 열리면 벗이여 산으로 오사이다, 들로 오사이다 부자도 한 간 방, 미인도 한 줌 밥에 살거니 이 너른 벌판에 그대 오직 왕자(王者)로 거(居)하시리이다
미발표(『돌아온 날개』),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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