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시인 / 선구자
눈이 몹시 퍼붓는 어느 해 겨울이었다. 눈보라에 우는 `당나귀[驢馬]'를 이끌고 두만강녘까지 오니, 강물은 얼고 그 위에 흰 눈이 석 자나 쌓였었다.
인적은 없고, 해는 지고― 나는 몇 번이고 돌아서려 망설이다가 대담하게 얼음장 깔린 강물 위를 건넜다.
올 때 보니 북새(北塞)로 가는 이사(移徙)꾼들 손에 널따란 신작로가 만들어 놓였다, 지난 밤 건너던 내외곡길 위에다―
국경의 밤, 한성도서, 1924
김동환 시인 / 송화강 뱃노래
새벽 하늘에 구름짱 날린다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구름만 날리나 내 맘도 날린다.
돌아다보면은 고국이 천리런가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온 길이 천리나 갈 길은 만리다.
산을 버렸지 정이야 버렸나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몸은 흘러도 넋이야 가겠지
여기는 송화강, 강물이 운다야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강물만 울더냐 장부도 따라 운다.
삼천리, 1935
김동환 시인 / 숙명
들이고, 숲이고, 거리로 여러 날 여러 밤을 미칠 듯, 찾아 외침은 채울 길 바이 없는 이 가슴 행여 그득하여지올까고, 고르지 못한 이 영혼 또한 바로잡혀지올까고, 마치 수평 못 얻은 물결이 수평 얻을 철까지 이리저리 헤매고, 찾고, 부르짖듯 그대 뵈옵기 전 이리 됨이 이 몸의 숙명 아니올까.
해당화, 삼천리사, 1942
김동환 시인 / 시작
단 한 마디 뻐꾹 소리 땅에 퍼지자, 산에 들엔 봄빛이 가득 차네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김동환 시인 / 아무도 모르라고
떡갈나무숲 새로 졸졸졸 흐르는 아무도 모르는 샘물이길래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지요, 나 혼자 마시곤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는 이 기쁨이여.
해당화, 삼천리사,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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