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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동환 시인 / 선구자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21.

김동환 시인 / 선구자

 

 

눈이 몹시 퍼붓는 어느 해 겨울이었다.

눈보라에 우는 `당나귀[驢馬]'를 이끌고 두만강녘까지 오니,

강물은 얼고 그 위에 흰 눈이 석 자나 쌓였었다.

 

인적은 없고, 해는 지고―

나는 몇 번이고 돌아서려 망설이다가

대담하게 얼음장 깔린 강물 위를 건넜다.

 

올 때 보니

북새(北塞)로 가는 이사(移徙)꾼들 손에

널따란 신작로가 만들어 놓였다,

지난 밤 건너던 내외곡길 위에다―

 

국경의 밤, 한성도서, 1924

 

 


 

 

김동환 시인 / 송화강 뱃노래

 

 

새벽 하늘에 구름짱 날린다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구름만 날리나

내 맘도 날린다.

 

돌아다보면은 고국이 천리런가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온 길이 천리나

갈 길은 만리다.

 

산을 버렸지 정이야 버렸나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몸은 흘러도

넋이야 가겠지

 

여기는 송화강, 강물이 운다야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강물만 울더냐

장부도 따라 운다.

 

삼천리, 1935

 

 


 

 

김동환 시인 / 숙명

 

 

들이고, 숲이고, 거리로

여러 날 여러 밤을 미칠 듯, 찾아 외침은

채울 길 바이 없는 이 가슴 행여 그득하여지올까고,

고르지 못한 이 영혼 또한 바로잡혀지올까고,

마치 수평 못 얻은 물결이

수평 얻을 철까지 이리저리 헤매고, 찾고, 부르짖듯

그대 뵈옵기 전 이리 됨이 이 몸의 숙명 아니올까.

 

해당화, 삼천리사, 1942

 

 


 

 

김동환 시인 / 시작

 

 

단 한 마디 뻐꾹 소리

땅에 퍼지자,

산에 들엔 봄빛이 가득 차네

 

삼인시가집, 삼천리사, 1929

 

 


 

 

김동환 시인 / 아무도 모르라고

 

 

떡갈나무숲 새로 졸졸졸 흐르는

아무도 모르는 샘물이길래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지요,

나 혼자 마시곤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는 이 기쁨이여.

 

해당화, 삼천리사, 1942

 

 


 

김동환 [金東煥, 1901.9.21~?(납북)] 시인

1901년 함경북도 경성(鏡城)에서 출생. 본관 강릉. 호 파인(巴人). 창씨명(創氏名)은 시로야마 세이주[白山靑樹]. 중동(中東)학교를 졸업. 일본 도요[東洋]대학 문과 수학. 1924년 시 〈적성(赤星)을 손가락질하며〉로 《금성(金星)》誌에 추천을 받고 문단에 데뷔. 1925년 한국 최초의 서사시(敍事詩)로 일컬어지는 대표작이며 동명 시집인 《국경의 밤》을 간행. 민요적 색채가 짙은 서정시를 많이 발표하여 이광수(李光洙) ·주요한(朱耀翰) 등과 함께 문명을 떨침.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자로 근무.

1929년 월간지 《삼천리(三千里)》를 창간. 1938년 《삼천리문학(三千里文學)》 발간. 1939년 총독 미나미[南次郞]의 <새로운 동양의 건설> 등을 《삼천리》에 실어 잡지의 내선일체 체제를 마련한 그는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상임이사 등을 지내면서 적극적인 친일파로 변신. 1950년 6 ·25전쟁 때 납북되었으며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음. 저서로는 『승천(昇天)하는 청춘』, 『삼인시가집(三人詩歌集)』(李光洙 ·朱耀翰 공저), 『해당화』 등과 그외 다수의 소설 ·평론 ·수필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