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한 시인 / 봄달 잡이
봄날에 달을 잡으러 푸른 그림자를 밟으며 갔더니 바람만 언덕에 풀을 스치고 달은 물을 건너 가고요---
봄날에 달을 잡으러 금물결 해치고 저어갔더니 돌 씻는 물소리만 적적하고 달은 들 너머 재 너머 기울고요---
봄날에 달을 잡으러 '밤'을 기어 하늘에 올랐더니 반쯤만 얼굴을 내다보면서 "꿈이 아니었더면 어떻게 왔으랴."
봄날에 달을 잡으러 꿈길을 헤여 찾아갔더니 자기도 전에 별들이 막아서서 "꿈이 아니었더면 어떻게 왔으랴."
주요한 시인 / 복사꽃 피면
복사꽃이 피면 가슴 아프다 속생각 너무나 한 없으므로. 아름다운 새벽, 조선문단사, 1924
주요한 시인 / 새벽꿈
나는 깨었다, 졸음은 흙속에 스러지고 해는 없으되 낮같이 밝은 언덕가으로 나는 가비엽게 걸어간다, 흰 수풀 흰 나무 있는 데 길은 끊어지고 두터운 구름 그 끝에 일어난다 넓으나 넓은 언덕 우에 무거운 마음은 바깥 찬기운과 슬치는 듯하여 더욱 무겁고 허둥거리는 발은 허공(虛空)을 차고 땅에 엎드리니 어디선가 이상(異常)한 앓는 소리 귀를 친다. 아아 이 언덕 저편 끝에 한 마리 누런 개 사슬에 끌려 힘없는 저항(抵抗)의 신음(呻吟)으로털 뽑힌 모가지, 길게 느리우고 상(傷)한 발톱은 흙을 깬다. 아아 나의 눈은 어둡고 어깨는 떨려 더운 눈물은 가슴에서 끓어오르며 밟고 섰는 땅은 흔들리고 기울어, 갑자기! 가슴식는 두려움이 내 몸을 한없는 땅 밑으로 떨어뜨린다. 아아 나는 새벽에 잠깨었으나 나의 마음은 한때도 가라앉지 않지 막을 수 없는 어떤 사슬 쉴새없이 나의 가슴을 이끄는 듯하여 낮은 베게 우에 뜻없는 눈물 쏟고 있도다, 아침 햇빛, 나의 속 어두운 담벽에 비치는 날까지. 아름다운 새벽, 조선문단사, 1924
|
'◇ 시인과 시(근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병화 시인 / 밤의 이야기 20 외 4편 (0) | 2019.08.22 |
---|---|
김동환 시인 / 선구자 외 4편 (0) | 2019.08.21 |
조병화 시인 / 사랑하면 외 4편 (0) | 2019.08.21 |
김동환 시인 / 봄놀이 외 4편 (0) | 2019.08.20 |
조지훈 시인 / 병에게 외 4편 (0) | 2019.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