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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주요한 시인 / 봄달 잡이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21.

주요한 시인 / 봄달 잡이

 

 

봄날에 달을 잡으러

푸른 그림자를 밟으며 갔더니

바람만 언덕에 풀을 스치고

달은 물을 건너 가고요---

 

봄날에 달을 잡으러

금물결 해치고 저어갔더니

돌 씻는 물소리만 적적하고

달은 들 너머 재 너머 기울고요---

 

봄날에 달을 잡으러

'밤'을 기어 하늘에 올랐더니

반쯤만 얼굴을 내다보면서

"꿈이 아니었더면 어떻게 왔으랴."

 

봄날에 달을 잡으러

꿈길을 헤여 찾아갔더니

자기도 전에 별들이 막아서서

"꿈이 아니었더면 어떻게 왔으랴."

 

 


 

 

주요한 시인 / 복사꽃 피면

 

 

복사꽃이 피면

가슴 아프다

속생각 너무나

한 없으므로.


아름다운 새벽, 조선문단사, 1924

 

 


 

 

주요한 시인 / 새벽꿈

 

 

나는 깨었다, 졸음은 흙속에 스러지고

해는 없으되 낮같이 밝은 언덕가으로

나는 가비엽게 걸어간다, 흰 수풀

흰 나무 있는 데 길은 끊어지고

두터운 구름 그 끝에 일어난다

넓으나 넓은 언덕 우에 무거운 마음은

바깥 찬기운과 슬치는 듯하여 더욱 무겁고

허둥거리는 발은 허공(虛空)을 차고 땅에 엎드리니

어디선가 이상(異常)한 앓는 소리 귀를 친다.

아아 이 언덕 저편 끝에 한 마리 누런 개 사슬에 끌려            

힘없는 저항(抵抗)의 신음(呻吟)으로털 뽑힌 모가지,

길게 느리우고 상(傷)한 발톱은 흙을 깬다.

아아 나의 눈은 어둡고 어깨는 떨려

더운 눈물은 가슴에서 끓어오르며

밟고 섰는 땅은 흔들리고 기울어, 갑자기!

가슴식는 두려움이 내 몸을 한없는 땅 밑으로 떨어뜨린다.

아아 나는 새벽에 잠깨었으나

나의 마음은 한때도 가라앉지 않지

막을 수 없는 어떤 사슬 쉴새없이

나의 가슴을 이끄는 듯하여

낮은 베게 우에 뜻없는 눈물 쏟고 있도다,

아침 햇빛, 나의 속 어두운 담벽에 비치는 날까지.


아름다운 새벽, 조선문단사, 1924

 

 


 

주요한 [朱耀翰, 1900.10.14 ~ 1979.11.17] 시인

1900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목사 주공삼(朱孔三)의 8남매 중 맏아들로 출생. 시인 ∙ 언론인 ∙ 정치인. 호는 송아(頌兒). 필명은 벌꽃 ∙ 낙양(落陽) 등. 소설가 주요섭(朱耀燮)의 친형. 1912년 평양숭덕소학교, 1918년 일본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등부 졸업. 1919년 동경의 제1고등학교 졸업. 1925년 상해(上海) 후장대학 졸업. 대학 재학시 상해의 독립신문 기자로 활동.

1919년 1월에 간행된 《학우》 창간호에 '에튜으트'라는 큰 제목으로 창작시 〈시내〉 ∙ 〈봄〉 ∙ 〈눈〉 ∙ 〈이야기〉 ∙ 〈기억〉의 5편을 발표하며 시작(詩作)활동 시작. 시집으로 『아름다운 새벽』 외에,  『3인시가집(三人詩歌集)』(三千里社, 1929),  『봉사꽃』(世宗書院, 1930) 등이 있고, 일반 논저로는  『자유의 구름다리』(泰成社, 1959),  『부흥논의』(大成文化社, 1963),  『안도산전서(安島山全書)』(三中堂, 1963) 등이 있음.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 및 화신상회(和信商會)의 중역 및 대한상공회의소 특별위원, 대한무역협회 회장, 국제문제연구소장, 민주당민의원의원 초선 및 재선, 4 ∙ 19 당시는 부흥부장관 및 상공부장관, 경제과학심의회 위원, 대한일보사 사장, 대한해운공사 대표이사 역임.197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