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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최남선 시인 / 아느냐 네가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23.

최남선 시인 / 아느냐 네가

 

 

공작이나 부엉이나 참새나

새 생명 가진 것은 같은 줄

아느냐 네가

 

쇠 끝으로 부싯돌을 탁 치면

그새어미 불이 나서 날림을

아느냐 네가

 

미난 물이 조금조금 밀어도

나중에는 원물만큼 느는 줄

아느냐 네가

 

건장한 이들이 가는 먼 길을

다리 성치 못하여도 가는 줄

아느냐 네가

 

 


 

 

최남선 시인 / 혼자 앉아서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은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백팔번뇌, 동광사, 1926

 

 


 

 

최남선 시인 / 봄길

 


1


버들 잎에 구는 구슬

알알이 짙은 봄빛


찬비라 할지라도

님의 사랑 담아 옴을


적시어 뼈에 스민다

말달 누가 있으랴.


2


볼 부은 저 개구리

그 무엇에 쫓겼관대


조르를 젖은 몸이

논귀에서 헐떡이나


떼봄이 쳐들어와요

더위 함께 올데다


3


저 강상(江上) 작은 돌에

더북할손 푸른 풀을


다살라 욱대길 제

그 누구가 봄을 외리


줌만한 저 흙일망정

놓여 아니 주도다


백팔번뇌, 동광사, 1926

             

 


 

 

최남선 시인 / 꽃 두고

 

 

나는 꽃을 즐겨 맞노라.

그러나 그의 아리따운 태도를 보고 눈이 어리어,

그의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코가 반하여,

정신(精神)없이 그를 즐겨 맞음 아니라

다만 칼날 같은 북풍(北風)을 더운 기운으로써           

인정(人情)없는 살기(殺氣)를 깊은 사랑으로써

대신(代身)하여 바꾸어

뼈가 저린 얼음 밑에 눌리고 피도 얼릴 눈구덩에 파묻혀 있던

억만(億萬)목숨을 건지고 집어 내어 다시 살리는

봄바람을 표장(表章)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맞노라.

 

나는 꽃을 즐겨 보노라.

그러나 그의 평화(平和) 기운 머금은 웃는 얼굴 흘리며

그의 부귀 기상(富貴氣象) 나타낸 성(盛)한 모양 탐하여

주저(主著) 없이 그를 즐겨 봄이 아니라

다만 겉모양의 고운 것 매양 실상이 적고

처음 서슬 장(壯)한 것 대개 뒤끝 없는 중(中)

오직 혼자 특별(特別)히           

약간영화(若干榮華) 구안(苟安)치도 아니코 허다마장(許多魔障) 겪으면서 굽히지 않고

억만(億萬) 목숨을 만들고 늘여 내어 길이 전(傳)할 바

씨열매를 보육(保育)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보노라.


소년, 1909. 5

 

 


 

최남선(崔南善) 시인 / 1890~1957

국학자. 사학자. 호는 육당(六堂). 서울에서 출생. 1902년 경성 학당에 입학하여 일본어를 배우고, 1904년 황실 유학생으로 일본에 갔다가 3개월 만에 귀국, 1906년 다시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 대학에서 지리, 역사 등을 공부하였다. 1907년 <모의 국회 사건>으로 중퇴하고, 이듬해 귀국하여 자택에 <신문관>을 설립, 인쇄 시설을 갖춘 후 잡지 <소년>을 창간하여 논설문과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는 한편, 이광수의 계몽적인 소설을 실어 우리 나라 근대 문학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1909년부터 안창호와 함께 <청년 학우회>설립 위원이 되어 <청년 학우회가>등의 노래를 짓는 등 청소년 지도 운동에 앞장 섰다. 1911년 <소년>이 폐간된 후 <아이들 보이> <샛별> <청춘>등의 잡지를 계속 발간하여 새로운 지식 보급과 민중 계몽에 공헌하였다. 3.1운동 때는 <독립 선언문>을 기초하고 민족 대표 48인의 한 사람으로서 체포되어 2년 6개월의 형을 선고 받았으나 이듬해 가출옥하였다. 1922년에 동명사를 창설하여 주간지 <동명>을 발행하였고, 1924년에는 <시대 일보>를 창간, 사장이 되었으나 곧 사임하였다. 1927년에 논설 <불함 문화론>을 발표하였고, 1938년에 <만몽 일보>고문으로 있다가 일본 관동군이 세운 건국 대학 교수가 되었다. 광복 후 반민족 행위자 처단법에 의해 복역했고, 6.25 남침 때 해군전사 편찬 위원회 촉탁이 되었다가 서울시사 편찬 위원회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신문화 수입기에 있어서 언문 일치의 신문학 운동과 국학 관계의 개척에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주요 저서에 시조집 <백팔 번뇌>와 역사서 <조선 역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