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선 시인 / 아느냐 네가
공작이나 부엉이나 참새나 새 생명 가진 것은 같은 줄 아느냐 네가
쇠 끝으로 부싯돌을 탁 치면 그새어미 불이 나서 날림을 아느냐 네가
미난 물이 조금조금 밀어도 나중에는 원물만큼 느는 줄 아느냐 네가
건장한 이들이 가는 먼 길을 다리 성치 못하여도 가는 줄 아느냐 네가
최남선 시인 / 혼자 앉아서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은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백팔번뇌, 동광사, 1926
최남선 시인 / 봄길
1
버들
잎에 구는 구슬
알알이
짙은 봄빛
찬비라
할지라도
님의
사랑 담아 옴을
적시어
뼈에 스민다
말달
누가 있으랴.
2
볼
부은 저 개구리
그
무엇에 쫓겼관대
조르를
젖은 몸이
논귀에서
헐떡이나
떼봄이
쳐들어와요
더위
함께 올데다
3
저
강상(江上) 작은 돌에
더북할손
푸른 풀을
다살라
욱대길 제
그
누구가 봄을 외리
줌만한
저 흙일망정
놓여
아니 주도다
백팔번뇌,
동광사, 1926
최남선 시인 / 꽃 두고
나는 꽃을 즐겨 맞노라. 그러나 그의 아리따운 태도를 보고 눈이 어리어, 그의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코가 반하여, 정신(精神)없이 그를 즐겨 맞음 아니라 다만 칼날 같은 북풍(北風)을 더운 기운으로써 인정(人情)없는
살기(殺氣)를 깊은 사랑으로써 대신(代身)하여
바꾸어 뼈가 저린 얼음 밑에 눌리고 피도 얼릴 눈구덩에 파묻혀 있던 억만(億萬)목숨을 건지고 집어 내어 다시 살리는 봄바람을 표장(表章)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맞노라.
나는 꽃을 즐겨 보노라. 그러나 그의 평화(平和) 기운 머금은 웃는 얼굴 흘리며 그의
부귀 기상(富貴氣象) 나타낸 성(盛)한 모양 탐하여
주저(主著)
없이 그를 즐겨 봄이 아니라 다만 겉모양의 고운 것 매양 실상이 적고 처음
서슬 장(壯)한 것 대개 뒤끝 없는 중(中)
오직 혼자
특별(特別)히
약간영화(若干榮華)
구안(苟安)치도 아니코 허다마장(許多魔障) 겪으면서 굽히지 않고 억만(億萬)
목숨을 만들고 늘여 내어 길이 전(傳)할 바 씨열매를
보육(保育)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보노라.
소년,
190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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